전국택배노조의 CJ대한통운 본사 점거가 15일로 엿새째다. 불법 난입의 명분으로 노조는 세 가지를 내세우고 있다. 대리점이 아니라 원청인 CJ대한통운이 협상 테이블에 나와야 한다는 것, 지난해 사회적 합의에 따라 체결한 표준계약서의 부속합의서가 노예 계약이라는 주장 등이다. CJ대한통운이 지난해 택배비 인상에 따른 이윤을 독식하고 있다는 것도 택배노조의 주요 논리 중 하나다.
이 과정에서 누가 ‘공짜 노동’을 제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댈 것이냐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정부는 2500원짜리 택배 상자를 기준으로 170원을 투자 비용으로 공제한다는 것을 합의안에 담았다. 기존까진 2500원의 절반인 1250원을 대리점과 택비기사의 몫으로 뗐다면 합의안 이후로는 170원을 공제한 2330원의 50%를 떼기로 한 것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물류업계가 작년 초부터 줄곧 요구해 온 택배비 인상을 용인했다. 택배노조가 문제 삼는 건 이 대목이다. 택배기사들이 고통을 분담했는데 정작 택배비 인상에 따른 혜택을 CJ대한통운이 독식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택배노조 주장의 사실 여부는 CJ대한통운의 지난해 실적에서 가늠해볼 수 있다. 10일 공시에 따르면 CJ대한통운은 지난해 택배부문에서 1983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전년 대비 510억원 증가했다. 택배부문의 영업이익률은 5.6%로 전년보다 0.9%p 상승하는데 그쳤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요즘처럼 택배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택배업체가 초과 이윤을 가져간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노조의 주장대로라면 네이버, G마켓 같은 대형 e커머스 플랫폼들부터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택배노조는 CJ대한통운이 초과이윤을 가져간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추정액조차 때에 따라 고무줄이다. 지난해 12월20일 파업 결의를 알린 기자설명회에선 초과이윤이 연 3500억원에 달한다고 했으나 8일 뒤 파업출정식에선 3000억원으로 낮췄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CJ대한통운에 택배를 맡기는 화주가 10만개에 육박하고, 각 화주별로 협상에 따라 택배비 인상액이 다르다”며 “각종 설비 투자와 임금 및 유류비 상승 등으로 택배에 들어가는 원가가 수년째 올라 이를 현실화한 것인데 택배비 인상분을 택배기사에 나눠달라는 것은 억지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국토부 승인을 통해 법적 효력을 갖는 계약서가 대리점과 택배기사들 사이에 맺어졌음에도 택배노조는 노예계약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노조 무력화를 위한 기만”이라는 것이 노조측 주장이다. 한 비노조 택배기사는 “조합원들이 태업 명목으로 현장에서 대리점주들을 괴롭히기 위해 자신들 마음대로 하던 것들을 계약상 제한받게 되니 이에 반발하는 것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택배기사는 “토요일 근무만 해도 택배기사가 원치 않으면 안 해도 되고, 물량을 다른 기사한테 넘기면 그만”이라며 “노조 소속 택배기사들은 토요일은 쉬되, 배송하지 못한 물량은 그대로 본인들이 월요일에 배송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당일배송 우선’ 역시 계약서상 원칙일 뿐 이를 어기더라도 택배기사를 제재할 방법은 없다. 주 60시간 근무를 초과할 경우 당일배송을 하지 않아도 되며, 60시간 이내일지라도 원하지 않으면 당일 배송을 다른 기사에게 넘길 수 있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노사 교섭의 결과인 단체협약은 계약보다 선행한다. CJ대한통운과 택배노조의 단체협약 사항이 대리점-택배기사 간 계약의 조건과 맞지 않으면 대리점의 존립 근거가 사라질 수 있다. 현재 택배업계는 택배사가 대리점과 특정 지역에 대한 택배의 집하와 배송에 대한 위수탁 계약을 맺고, 대리점이 다시 개인사업자인 택배기사들과 같은 내용의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CJ대한통운도 마찬가지다.
이와 관련,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할 것인지에 관한 법률 공방도 치열하다. 지난해 중앙노동위원회는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했다. 현재 택배사들이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다. 상급기관인 고용노동부도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기존 대법원 판례와 행정해석은 단체교섭의 상대방으로 사용자에 대한 명시적,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변함없다”고 답변했다. 현행법률상 원청을 사용자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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