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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A씨는 메뉴판의 앞자리 숫자를 고심 끝에 바꿨다. 배달대행사에 내야 할 배달요금은 정해져 있는데, 그렇다고 주문자가 부담해야 할 배달팁을 올리자니 손님이 떨어져 나갈까 봐 결국 음식값을 올리기로 한 것이다. 요즘 A씨는 물가가 고공 상승 중이라는 신문 기사가 차라리 반갑다. 실제 돈육, 기름값 등 원료 가격이 올라 부담이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음식값을 올려도 손님들의 저항이 덜하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배달 시장은 얼마나 커진 걸까. 배달의민족, 요기요, 쿠팡이츠 등 배달앱 3사를 통해 이뤄진 결제액은 작년에만 20조 원을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8년 3조1000억 원과 비교해 불과 3년 만에 6배 이상 시장 규모가 커진 셈이다. 배달은 먹거리에 대한 새로운 수요를 만든 것일까, 아니면 기존의 외식과 마트 장보기를 대체한 것일까. 아마 둘 다일 것이다.
덩치가 커진 만큼 배달 시장의 후생 효과는 예상대로 흘러갔을까? 이에 대해 의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배달비 1만 원 시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현상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평택의 A씨 사례처럼 식당 주인들이 음식값을 올리는 일이 확산하고 있다. 식당에 찾아가 먹는 손님들이 배달비 상승으로 인한 음식값 인상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배달 라이더’들도 불만이긴 마찬가지다. 고소득 직업이라는 말들은 강남의 일부 사례인데도 마치 전체의 일인 양 과장되기 일쑤다. 대부분 겹벌이를 뛰고 있는 라이더들은 배달 대행 플랫폼에 떼이는 수수료와 언제든 다칠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살얼음 걷는 도로 위를 질주한다. 급기야 정부가 배달비 고시제를 꺼낼 정도다.
만일, 배달시장이 배민과 요기요가 양분한 채로 흘러갔다면 어땠을까. 가설을 증명할 만한 실험이 불가능하긴 하지만, 배달 수요 자체가 적고 아직 쿠팡이츠가 침투하지 못한 부산의 사례를 보면 가설의 결과를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 있다. 배달대행업체에 따르면 전국의 평균 배달료(전체 배달비 중 배달대행사와 라이더가 가져가는 몫)는 4000원가량이다. 서울 강남권과 세종시처럼 배달 라이더를 구하기 힘든 특수 상권은 5000~1만 원까지 치솟는 데 비해 부산만 해도 3000원 선에 불과하다. 부산은 지역 내 라이더 공급은 원활한 편인데 배달 수요가 상대적으로 적고, 소비자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체감 배달비의 상한선이 서울에 비해 낮다.
그렇다고 쿠팡발(發) 단건 배달을 마냥 비판하기는 어렵다. 거꾸로 배달 시장의 품질을 올림으로써 코로나19 이후에도 지속할 수 있을 수 있도록 체질 개선을 도왔다는 평가도 나온다. 급할 때 시켜 먹는 묶음 배달만으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쿠팡이츠는 ‘미식(美食) 배달’ 혹은 ‘맛집 배달’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함으로써 배달의 외연을 넓혔다. 1등 사업자인 배민이 쿠팡의 단건 배달을 추종하고 있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간에 배달 시장이 묶음에서 단건 배달로, 동네 식당에서 맛집 주문으로 진화하면서 배달 플랫폼 3사는 배달비 인하를 위한 묘수를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자칫하면 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낙인찍힐 수 있어서다. 3사 모두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통한 효율적인 배달 방식을 찾는데 골몰하고 있다.
쿠팡이츠는 ‘라이더 기본소득’이라는 콘셉트를 구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배송 최적화 시스템을 통해 라이더들을 지역별로 고루 분산시킴으로써 라이더들이 어느 지역에 있든 안정적으로 월 500만 원 전후의 소득을 올리도록 해주고, 결과적으로 배달비 평균을 낮추겠다는 전략이다. IT업계 관계자는 “쿠팡이츠가 준비 중인 신개념 배달 시스템의 핵심은 라이더들의 월평균 혹은 연 평균 수입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주는 것”이라며 “그동안 쌓인 주문 데이터와 라이더의 이동 경로 등을 종합해 라이더들을 지역별로 미리 분산시켜 배치한다는 발상”이라고 설명했다.
배달 라이더 ‘쏠림 현상’은 배달비를 급등시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라이더들은 자신만의 경험을 바탕으로 주문이 많이 들어오는 지역에 대기하는 경향이 강하다. 논현동 등 서울 강남의 특정 지역에서 활동하는 라이더 중 일부는 밤낮없이 뛰면 연간 1억 원을 넘는 소득을 올리기도 한다. 강남만 해도 워낙 주문량이 많다 보니 라이더들이 쏠려도 배달비는 올라간 채로 요지부동이다. 문제는 강남 외 다른 지역들로 여파가 미친다는 점이다. 한 배달대행업체 관계자는 “오미크론 확산으로 최근 배달 수요가 전년 대비 50% 정도 늘었는데 라이더 증가는 기껏해야 20% 미만”이라며 “게다가 특정 지역에 라이더들이 몰려 가 있다 보니 다른 지역에선 라이더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지적했다. 배달대행업체들은 대개 식당에서부터 배달 장소까지 최적 경로를 제공해주기는 하지만, 라이더 쏠림 현상 자체를 없애는 데까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쿠팡이츠의 셈법은 단건 배달에 이어 라이더 배치 최적화로 또 한 번 시장의 판도를 흔들겠다는 것이다. 쿠팡이츠는 단건 배달을 시작하면서 크라우드 소싱 방식으로 라이더를 모집했다. 생각대로, 바로고 등 배달대행업체들을 중간에 끼고 주문을 처리하고 있는 배달의민족과는 정반대다. 오토바이, 자전거, 도보, 자동차 등 다양한 운송 수단을 활용해 쿠팡이츠의 주문을 잡은 다양한 배달 기사들의 위치와 동선 등에 관한 데이터를 오랫동안 축적했다는 얘기다. 배달앱 관계자는 “쿠팡이츠는 단건 배달을 시행하면서 대규모 마케팅 비용을 라이더에게 쏟아부었다”라며 “묶음 배달로 벌던 수입을 단건 배달로도 벌 수 있음을 확인시켜주기 위한 전략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라이더들을 배달대행업체로부터 떨어져 나가 쿠팡이츠의 크라우드 소싱에 오도록 하는 부수 효과도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메쉬코리아는 올해 영업수익 목표액을 6000억 원 규모로 잡고 있는 국내 1위 물류 스타트업이다. 마이크로풀필먼트센터(MFC) 등 전국에 450여 개의 직영 물류 거점을 운영 중이다. 이륜, 사륜차를 모두 갖추고 있는 데다 AI에 기반한 운송솔루션과 물류창고관리시스템 등 IT 솔루션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BBQ, 올리브영, 오아시스 등 법인 고객사만 16일 현재 250여 개에 달한다. 가입 상점 수는 약 6만7000개다. 메쉬코리아와 배민이 동맹을 맺게 될 경우 파급 효과는 상당할 전망이다.
단건 배달 경쟁에 뛰어들지 않고 있는 요기요는 배달비 폭등의 피해에 속수무책이다. 요기요와 거래하는 식당주들은 건당 2900원의 정액제 방식으로 배달료를 지불하고 있다. 전국 평균 배달료가 4000원인 터라 나머지 차액을 요기요가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요기요 관계자는 “요기요는 배달 경로 최적화를 가장 오랫동안 고민하고 데이터를 축적했다”며 “단건 배달을 하지 않아도 식지 않은 음식을 빠르게 배달해주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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