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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나 영화를 보고 딱 한 단어로 요약할 때 고구마나 사이다를 들먹인다. 2007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도리스 레싱의 소설 《다섯째 아이》는 고구마 쪽이다. 벤과 친구들의 일탈을 보며 ‘사이다’를 외치는 독자도 있을지 모르겠다. 172페이지로 얇은 책이지만 내용이 묵직해 읽고 나면 여러 생각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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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파티에서 만난 해리엇과 데이비드, 둘은 ‘보수적이면서 좀 답답한 사람, 수줍고 비위 맞추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평을 들었다. 남자를 사귄 적 없는 해리엇과의 만남에 매우 신중한 데이비드는 구석에서 술잔을 들고 서 있다가 마치 서로를 보는 듯한 느낌에 빠지게 된다.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해리엇과 달리 데이비드는 일곱 살 때 부모의 이혼을 겪었다. 선박 건조업자인 부자 아버지 제임스와 달리 어머니 몰리는 검소한 교수와 재혼했다. 여동생은 부자 아빠를 따라갔고 데이비드는 난방이 안 되는 낡은 엄마 집을 선택했다.
형, 누나들과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엄마에게도 가까이 오지 않는 벤. 힘은 점점 더 세지고 아무 때나 고함을 질러 모두를 질리게 한다. 결국 데이비드는 아들을 요양원에 보낸다. 해리엇은 4시간 걸리는 요양원에 찾아갔고, 더러운 환경과 약물에 취해 있는 벤을 데려온다.
네 명의 정상적인 아이와 한 명의 감당할 수 없는 아이, 양쪽을 다 돌보는 건 힘든 일이다. 엄마의 보살핌을 못 받은 네 명의 아이들은 스스로 제 살길을 찾아 나선다. 기숙학교에 다니거나 친척 집에 머물던 아이들은 방학 때 잠깐 집에 들른다. 아이들의 학비를 마련하고 넓은 집을 유지하기 위해 퇴근 후 아르바이트까지 하는 데이비드는 돌아오지 않는 날이 많다. 늘 떠들썩하던 집에는 벤의 고함과 해리엇의 두려움만 떠다닌다.
소설은 ‘그럼 이제 벤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라고 질문하며 끝난다. 대체 왜 착한 부부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해리엇이 “우리가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해야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에”라고 자책할 때 데이비드는 “누구나 벤 같은 애를 가질 수 있어. 그건 우연히 나타난 유전자야. 그것뿐이야”라며 달랜다.
도리스 레싱은 ‘빙하시대의 유전자가 우리에게도 내려온다’는 인류학자의 글을 보고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실제로 소설 속에 격세유전을 비롯한 이상한 유전자 얘기가 계속 등장한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심각한 범죄가 늘어나는 현실 속에서 작가는 벤을 통해 우리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미래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벤과 그 일당들’로 불리는 아이들을 감당하지 못하는 학교와 가정을 보면서 점점 광포해지는 우리 사회의 청소년 범죄를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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