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현모양처를 꿈꿨던 나는 왜 워킹맘이 되었나 [어쩌다 워킹맘]

입력 2022-02-21 11:51   수정 2022-02-21 11:55

[한경잡앤조이=박소현 블랭크코퍼레이션 PRO] 육아에 있어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자유의 박탈'과, 매일 반복되는 육체노동을 꼽을 수 있다. 이 두 가지와 연동되면서 가장 크리티컬한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감정 문제다.

'나의 바닥을 마주하는 일'



영아일 때, 그리고 어린이집 또는 유치원을 다니기 전까진 자유의 박탈, 루틴 되는 육체노동과 의지로는 전혀 조절이 되지 않고 어떤 타협이나 대화가 불가능한 대상과 씨름하면서 가장 힘든 정신적인 문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나의 밑바닥과 마주하는 일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어느 시점이 되면 아이가 기저귀를 떼면서 변기에서 소변을 누는 법을 가르치고, 아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바지가 젖는 실수를 한다. 우리는 다그치거나 혼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무엇보다 이건 당연한 것이고, 아이가 잘못한 일이 아니다.

이런 범주에서 보면, 아이가 저지레 하거나 끊임없이 집을 어지럽히는 것도 모두가 당연함의 범주이며 '탐색'의 과정이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이의 이런 행동들을 야단치거나 화를 내선 안된다고 알고 있다. (그저 함께 정리하면서 아이에게 하나씩 생활 규칙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참았다. 나 또한 꾹꾹 누르며, 내 한계가 올 때까지 참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임계치에 다다르면 폭발을 하곤 했다. 이렇게까지 화를 낼 일이 아니었음에도 이미 참을 만큼 참았기 때문에 터지고 만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폭발하고 나면 다시금 자괴감에 빠지곤 했다. 내 밑바닥을 경험한 그 느낌. 내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다고 믿었고, 그래도 내가 괜찮은 인간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가장 나약한 존재에게 감정을 퍼붓고 난 후에 오는 자괴감은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이런 나의 밑바닥과 마주치는 게 힘들었고, 이 경험이 내가 둘째를 낳는 것을 망설이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이기도 했다.

아이가 기관에 다니면서 부딪힌 또 하나의 감정 문제는 '불안함'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몇 개월을 보내고, 미루고 미뤄왔던 PT를 주 4회 했을 땐 그나마 나았다. 그러다 이사와 코로나19가 겹치면서 운동이나 친구들과 의 수다가 더 이상 불가했던 나는 극강의 불안함을 경험했다.

생활리듬은 무너졌고 한번 시작한 넷플릭스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나의 잉여스러움을 견딜 수 없던 날을 보내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어쩌면 ‘평생이 이러면 어떡하지?’ 라는 물음이었다. 지금이 내가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극강의 불안함과 위기감은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경력단절을 끝내고 복귀한 후 나는 정말 육아와 집안일이 안 맞는 사람이었구나 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66사이즈가 55 사이즈를 억지로 껴입을 수는 있지만 주기적인 소화불량을 해결할 수 없듯, 내가 그랬다.

주로 참다가 터지곤 했던 루틴 되는 아이와의 식사(보통 한 시간 정도 걸린다 OMG!)와 도망가는 아이를 붙들고 씻기는 일을 이모님 외주를 주고 나니 내 마음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사실 저녁이나 주말에도 피곤해서 역할놀이를 잘해주지는 못하지만 퇴근하고 마주친 아이는 너무 예쁘다. 그저 만지고 안고 뽀뽀하면서 놀려고 도망가는 아이를 붙들고 오늘 하루를 물어보는 역할을 주로 하게 됐고, 많은 육아 루틴 업무에서 벗어나다 보니 오히려 정서적인 지지는 더 나아진 것 같았다.

특히 외부 미팅이 많은 나는 그 과정에서도 오갈 데 없던 나의 에너지를 많이 쏟아내게 되는 것 같다.(그래서 가끔 TMT(투머치 토커)라고 동료들에게 조롱 받기도 한다.) 나의 밑바닥과 마주하던 자괴감이든, 내가 배부른 돼지가 된 것 같은 잉여로움이든 정신적 불안함의 끝을 맛본 후에 다시 찾은 내 일은 더없이 소중했고, 이전과는 마음가짐이 달랐던 것 같다.

어렵게 다시 잡은 기회에 마치 그간의 억눌렸던 에너지를 뿜어내기라도 하듯 혹은 나의 존재를 증명이라고 하고 싶었는지 정말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성과를 내고 싶었고, 성과를 내면서 받은 칭찬, 인정, 보상들이 사실 너무 달콤했다.

'한 사람을 키워내는 것'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동반하는 데에 비해 즉각적인 성취나 보상은 너무 멀리 있는 '육아'와는 달랐기에 그래서 육체노동에 극복하기 힘든 정신적 문제가 더해져 단연코 일을 하는 것보다 육아가 훨씬 힘든 일이었던 내게 전업주부는 존경의 대상이며, 그 와중에 부업까지 하는 주부(인플루언서 커머스 플랫폼을 운영하는 회사에 근무하기에 많이 접하게 된다)는 경외의 대상이며, 남편의 말처럼 아이 둘을 훌륭하게 키워내는 엄마는 사회적으로 매우 성공한 사람과 견주어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러나 혹시, 나처럼 육아를 하며 해결되지 않는 정신적 문제에 부딪히고 있다면
그냥 뭐 더 잃을 게 있나 하는 마음으로 취업의 문을 두드려봐도 어떨지. 세상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기회가 주어질지 모르는 거니까. 그리고 부딪혀보지 않으면 내가 해낼 수 있을지, 혹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를 수 있으니 말이다.

나 또한 4년여의 공백을 깨고 다시 일을 시작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두렵고 무서웠기에 결국 불안함이 두려움보다 더 커진 지점에서야 나 또한 그 두려움을 깨고 나올 수 있었다.

내게 필요했던 건 ‘다 그렇게 산다’ 라는 자조나, ‘엄마니까 위대하다’라는 식의 영웅담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어디선가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느꼈을 모든 엄마, 워킹맘들과 날 것 그대로의 불안과 좌절, 그것을 인정하면서 앞으로 나가는 과정을 ‘어쩌다 워킹맘’을 통해 풀어보려 한다.



박소현 씨는 올해 7살 아이의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워킹맘이다. 중어중문학을 전공한 그녀는 기자, 아나운서를 거쳐 현재 브랜드 빌딩 비즈니스 스타트업 블랭크코퍼레이션 커뮤니케이션 담당 프로로 제 2의 인생을 설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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