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18일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원유(WTI) 3월물 가격은 전날보다 0.18% 상승한 배럴당 90.2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WTI 가격은 올 들어서만 19%가량 올랐다. 14일 7년여 만의 최고치인 배럴당 96.48달러까지 치솟았던 브렌트유는 이날 93.54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임박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유가는 상승세를 유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주요 기관은 유가 100달러 시대를 기정사실로 삼는 분위기다. JP모간은 올 2분기 유가가 배럴당 125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유가가 100달러대에 진입하는 건 2008년 4~8월과 2011년 2월~2014년 8월에 이어 사상 세 번째다.
정부와 기업들도 글로벌 경기회복에 따라 올해 유가가 일시적으로 반등할 것으로 예상했다. 문제는 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데다 상승폭도 크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은 작년 9월 보고서를 통해 유가가 올해부터 완만하게 안정화될 것으로 예측했다. 한국석유공사도 올해 하반기부터 유가가 배럴당 70달러 수준으로 안정될 것으로 봤지만 예상과 달리 연초부터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기업들은 비용 압박이 커지면 올해 계획했던 설비투자를 일부 축소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산업은행에 따르면 올해 국내 3162개 기업의 설비투자 규모는 186조9000억원으로, 작년(180조4000억원) 대비 3.6% 증가할 전망이다. 유가가 배럴당 70달러대에 머물러 있던 작년 11월 말 수립한 경영계획을 토대로 조사한 결과다.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대폭 줄면 고용 축소와 소득 감소에 이어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빚게 된다. 더욱이 환율과 금리까지 오르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감당해야 하는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가 되면 올해 경제성장률은 0.3%포인트 하락하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1%포인트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업종별로는 정유, 철강, 화학, 전력·가스·증기, 항공 등 부문의 비용 상승 압력이 급증할 것으로 내다봤다.
문제는 국제 유가 변동에 민감한 산업 구조가 달라지지 않는 한 인건비 등 고정비 지출을 줄이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이달 중순 기준 항공유 가격은 배럴당 111.2달러로, 두 달 전(83달러) 대비 34.0% 급등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공유를 미리 구매하는 헤지를 통해 유가 급등에 대응하고 있지만, 고유가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선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경제계 관계자는 “경기회복에 더해 우크라이나 사태라는 변수가 터지면서 한동안 유가가 100달러를 유지하는 ‘뉴노멀’ 시대로 접어들 것”이라며 “기업들이 올 1분기 실적 목표를 달성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경민/맹진규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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