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비경영참여 주주제안 결정 주체를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로 변경하는 방안을 다시 추진한다. 논란이 됐던 주주대표소송 권한을 수탁위에 넘기는 방안은 통과시키지 않는 대신 주주제안 결정 권한을 수탁위로 넘기는 데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오는 25일 회의를 열고 '비경영참여(단순투자, 일반투자) 주주제안' 결정 주체를 기금운용위에서 수탁위로 이관하는 내용 등을 담은 수탁자 책임 활동 지침 개정 안건을 상정한다.
수탁위는 지금까지 중점관리사안 중 △배당△임원보수에 대해서만 주주제안 여부를 결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활동 지침 개정이 통과되면 수탁위는 그동안 기금운용위가 권한을 가지고 있었던 △법령상 위반 우려 △지속적 반대 의결권 행사 △기후변화·산업안전 관련 사안에 대해서까지 주주제안 결정 권한을 갖게 된다. '수탁위 결정에 따라' 중점관리사안에 대한 주주제안을 행사할 수 있다는 내용이 개정 지침에 포함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경제계 관계자는 "국민연금법상 수탁위의 권한은 검토·심의로 한정되며, '의결' 권한은 없다"며 "이번 지침 개정은 수탁위가 실질적으로 주주제안을 결정하는 주체가 되면서도 주요 결정에 대한 책임은 묻기 어려운 구조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행 중점관리사안 항목을 변경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정기 ESG 평가결과가 하락한 사안'을 삭제하고 '기후변화와 산업안전 관련 리스크 대응에 관한 사안'을 추가하는 것이 골자다. 문제는 기후변화·산업안전 관련 사안은 기준이 모호해 기업에 대한 지나친 경영 간섭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사안 선정 기준이 "기후변화·산업안전 관련 리스크 등에 노출도와 취약성이 높아 그 영향을 많이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로 해석의 여지가 넓기 때문이다.
사실상 '굴뚝산업'에 속하는 대부분의 기업이 주주제안의 대상이 될 수 있다. '203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한다' '2023년까지 내연기관차량 생산을 중단한다' 등의 무리한 정관 변경을 요구하는 주주제안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수탁위로의 권한 이양을 우려하는 것은 수탁위가 정치적 입김에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공무원 중심으로 구성된 기금운용위와 달리 수탁위는 사용자단체 추천 3인, 근로자단체 추천 3인, 지역가입자단체 추천 3인 등 총 9명으로 구성된다. 지역가입자단체 추천 인사가 '스윙 보터' 역할을 하는데 여기에는 시민단체, 소비자단체 등의 추천 인사가 포함된다. 수탁위에서는 노동·시민단체의 입김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반면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인 기금운용위는 기획재정부 차관, 농림축산식품부 차관,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고용노동부 차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등 당연직 위원 5인과 사용자·근로자·지역가입자대표·관계전문가 등 위촉위원 14인으로 구성돼 있다.
고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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