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를 유권자 집단의 의사결정 과정이라고 한다면, 어떤 물체의 상태를 측정하는 과정과 비교해 볼 수 있다. 어떤 물체의 길이, 높이, 폭, 무게 등을 측정하는 것은 이미 정해져 있는 물리량을 읽어낼 따름이다. 그래서 측정하는 행위 자체가 물리량에 변화를 주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 물리량을 먼저 측정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길이를 먼저 측정하고 나중에 무게를 측정하든지, 순서를 바꿔서 하든지 결과는 똑같이 나온다.
가장 간단한 물체의 양자상태는 두 가지 상태만 가진 큐비트로 나타낼 수 있다. 디지털 정보 단위인 비트(bit)가 0 또는 1을 나타내는 데 비해, 큐비트(qubit·양자비트)는 0과 1을 동시에 나타낼 수 있는 중첩상태에 있을 수 있다. 광자의 편광은 수평편광과 수직편광뿐 아니라 다양한 중첩이 가능하고, 전자의 스핀도 업(위), 다운(아래)뿐 아니라 다양한 방향의 중첩으로 나타낼 수 있다. 그렇지만 큐비트의 양자상태를 측정하면 항상 둘 중 하나만으로 선택된 결과가 나온다. 마치 법정에서 묻는 질문에 ‘예’ ‘아니오’로만 대답하라는 것과 같다.
‘붕괴(崩壞·무너짐)’라는 무시무시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측정에 의해 물체의 양자상태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1920년대 후반 당시 물리학자들에게 너무나도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현대 양자물리학이 성립되기 전에는 측정은 정해져 있는 물리량을 읽어낼 뿐이지 물리량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1905년 광전효과를 설명해 초기 양자물리학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까지 받은 아인슈타인은 양자측정이 양자상태를 변화시킨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고,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면 달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냐?’는 말까지 했다. 위에서 본 것처럼, 업·다운 스핀 측정을 먼저 하면 오른쪽·왼쪽 스핀 측정 결과는 완전히 불확정하게 된다. 이것이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서 가장 간단한 경우에 해당한다. 그리고 어떤 양자측정을 먼저 하느냐에 따라 마지막 결과가 달라지는 맥락성(contextuality)이 있다. 양자물리학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의 대부분은 사실 양자측정이 가진 특성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특성들에 대해 계속 탐구한 덕택에 양자컴퓨터와 양자암호, 양자텔레포테이션 같은 양자정보과학이 발전하게 됐다.
선거가 양자물리학적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선택을 결정짓는 선거가 단순히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새로운 합의를 이뤄나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온 국민이 배우고 궁리하여 좋은 나라를 만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김재완 고등과학원 부원장·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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