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무부는 24일(현지시간) 반도체, 컴퓨터, 통신, 정보보안 장비, 레이저, 센서 등 하이테크 제품의 러시아 수출을 통제하는 포괄적인 제재 방안을 발표했다. 상무부는 중국 화웨이 제재와 마찬가지로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을 적용했다. 외국 기업이 생산한 제품이라도 제조 과정에서 미국이 통제 대상으로 정한 장비나 소프트웨어, 설계를 사용했을 경우 수출을 금지할 수 있도록 한 강력한 제재 조항이다.
통상 반도체 생산에는 대부분 미국의 기초 설계기술이 들어간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생산하는 반도체 수출도 제한을 받는다는 뜻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제재로 러시아의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반도체 수출이 위축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설계기술이 주로 적용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가 들어가는 스마트폰 수출도 타격이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러시아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이 지난해 기준 30%로 1위다.
자동차 현지 생산과 부품업체 수출에도 큰 타격이 예상된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러시아로 수출하는 부품의 90% 이상은 현대차와 기아 러시아 공장으로 납품된다. 협회 관계자는 “국내 부품업체들에 러시아는 큰 시장”이라며 “완성차 업체는 수출 물량을 다른 시장으로 돌릴 수 있겠지만 부품업계는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기업들은 러시아발 2차전지 원자재값 상승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러시아는 원유와 천연가스뿐 아니라 비철금속을 생산하는 주요 국가 중 하나다. 러시아는 배터리 양극재의 핵심 광물인 알루미늄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생산한다. 니켈도 세계 3위다. 두 광물의 글로벌 생산 중 10%를 담당한다.
알루미늄은 24일 기준 t당 3445달러로, 작년 12월(2590달러) 대비 두 달 만에 33% 급등했다. 니켈은 t당 2만6105달러로, 작년 12월(1만9370달러) 대비 34.7% 오르는 등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다.
국내 중견·중소기업들은 이번 사태로 러시아 측 바이어로부터 수출대금을 받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와 KOTRA에 설치된 긴급대책반에는 러시아 침공 후 수출대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중소기업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루블화 환율 급등에 따른 환손실도 국내 기업들의 실적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강경민/김일규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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