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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 내내 탈(脫)원전 프레임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문재인 정부가 원자력발전에 대해 정권 말 처음으로 전향적인 의견을 내놨다. 정치권 안팎에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에 따른 에너지 공급망 차질 우려와 탈원전 부메랑을 맞은 한국전력의 대규모 적자 사태에 직면해 현 정부가 탈원전 기조에서 탈출구를 찾으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하지만 사회 각계와 산업계의 강한 반대를 무시하고 탈원전에 집착하며 뒤틀어버린 에너지 정책 왜곡의 책임을 면하기 힘들 것이란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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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무리한 탈원전 정책은 5조8000억원이 넘는 한국전력의 역대 최대 규모 영업손실로 이어졌다는 평가도 많다. 글로벌 탄소중립 기조에 따른 신재생에너지 확대 및 우크라이나 사태 등이 촉발한 각국의 ‘자원 무기화’ 흐름 속에서 한전의 실적 개선은 이후에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결국 전기요금의 급격한 인상 또는 세금을 통한 자금 지원 등이 불가피해 ‘묻지마 탈원전’ 정책 관련 청구서가 차기 정부 이후 순차적으로 날아들 것이란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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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선 임기 초반부터 탈원전 드라이브를 걸었던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이 다음달 대선을 의식한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 에너지 정책을 놓고 고조된 불만 여론을 잠재우려는 시도란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과 거리를 두면서도 ‘감원전’을 내세우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원전강국 부활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연일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건설이 중단된 신한울 3·4호기 공사 재개에 대해선 양 후보가 모두 현 정부와 거리를 두고 있다. 윤 후보는 작년 12월 경북 울진에 있는 신한울 3·4호기 공사 현장을 찾아 건설을 즉각 재개하고 원전 수출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건설 재개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거쳐서 재판단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에너지업계는 이날 문 대통령의 발언에 일단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문 대통령의 언급처럼 원전을 충분히 활용할 경우 국내 에너지 자립도 재고에 도움을 줄 수 있어서다. 우라늄 수입국이 다변화돼 있어 ‘에너지 무기화’에 대한 대응 부담도 작다. 또 각국이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도구로 원전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흐름에 동참할 수 있다. 입법조사처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까지 원전 11기의 설계 수명을 연장해 계속 운행할 경우 발전 부문에서 40.3%의 탄소 감축이 가능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생태계가 송두리째 무너진 마당에 이제 와서 원전을 강조한다고 해서 생태계가 복원될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한 대학 에너지학과 교수는 “정부 정책 여파로 각 대학 원자력공학과가 미달이 날 정도로 기초연구 기반마저 무너지고 있다”며 “지난 5년간의 탈원전은 미래 에너지 경쟁력을 훼손하는 끔찍한 결과를 냈다”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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