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연간 소비자물가가 4~5%대에 도달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10월 3.2%로 3%대를 돌파했다. 11월(3.2%), 12월(3.7%)에 이어 올해 1월 3.6%로 4개월 연속 3%대를 기록하고 있다.
국제유가가 100달러를 돌파한 가운데 추가 상승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통상 국제유가 상승은 2~3주의 시차를 두고 국내 물가에 영향을 미친다. 1일(현지시간)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해 2014년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4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장보다 7.69달러 오른 배럴당 103.41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2014년 7월22일 이후 최고치다. 브렌트유도 배럴당 107달러에 거래되면서 2014년 7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와 제2도시인 하리코프를 공격하면서 원유 공급 차질이 한층 현실화된 여파다.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 제재 수위를 높이고 있는 점도 유가 상승세를 키우는 요인. 앞서 미국 등은 러시아를 국제결제시스템(스위프트) 결제망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통해 러시아는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 수출이 심각한 영향을 받게 됐있다. 러시아는 세계 3위 산유국으로, 전 세계 교역량의 12%를 차지하고 있다.
고유가가 장기화될 가능성도 높다. 심지어 국제 유가가 2008년 세계금융위기 당시 최고가(배럴당 140달러)를 넘어설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미국 투자회사 바이슨 인터레스트의 조시 영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러시아 제재는) 원유 가격이 미친 듯이 오를 환경을 조성했다"며 "국제 원유 수급이 제한되면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 선으로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우크라이나 상황이 악화할 경우 리스태드 에너지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30달러까지, JP모건체이스는 배럴당 120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각각 예상했다.
유가가 뛰면 고스란히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우리나라의 원유 의존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중 1위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1만 달러당 원유 소비량은 5.7배럴로 가장 높은 의존도를 보이고 있다. 고유가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으로 국내 소비자물가도 큰 폭으로 오를 수 밖에 없는 구조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이어갈 경우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1.1%포인트, 120달러가 되면 1.4%포인트를 끌어올릴 것으로 전망했다. 산업별로는 원유를 주된 원자재로 사용하는 정유산업의 원가상승률이 23.5%를 기록하면서 가장 높은 비용 상승 압력에 직면하고 철강(5.26%), 화학(4.82%) 등도 원가상승률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됐다.
한국은행도 우크라이나 사태가 국내 물가 상승 압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지달 24일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이 글로벌 원자재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은 점을 감안하면 곧바로 원자재 수급 불균형이 나타나고 국내 물가 상승 압력으로 곧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당분간 국내 물가상승률은 3%대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정훈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석유류 가격이 현 수준에서 유지된다고 가정해도 기저효과는 5~6월 이후에야 크게 해소될 것"이라며 "올해 상반기까지는 3%대 물가상승률이 이어질 것이다. 향후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 등 지정학적 리스크 전개 방향에 따라 추가 상승 가능성도 있다"고 짚었다.
고은빛 한경닷컴 기자 silverlight@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