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제약사 사업부 인수 실패에 제조·유통사와 소송전까지…바람 잘 날 없는 유니레버

입력 2022-03-06 18:25   수정 2022-03-07 00:59

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영국 생활용품기업 유니레버가 잇따른 악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해 초 영국 제약사 글락스소미스클라인(GSK)의 소비자 사업부를 인수하려다 실패한 데 이어 이번엔 소송전까지 휘말렸다.

아이스크림 브랜드 벤앤제리스(사진)의 이스라엘 유통을 맡은 아메리칸퀄리티프로덕츠(AQP)는 지난 3일 미 뉴저지 연방법원에 유니레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유니레버 자회사인 벤앤제리스가 이스라엘 사업 계약을 부당하게 끝내려 한다는 이유에서다. AQP는 자신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하고 벤앤제리스 제품을 계속 팔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AQP는 34년간 이스라엘에서 벤앤제리스 아이스크림을 제조·유통해왔다. 벤앤제리스는 올해 말 AQP와의 계약이 끝나면 재계약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이스라엘이 점유한 팔레스타인 웨스트뱅크 지역에 아이스크림을 팔지 않기로 한 소비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아비 징거 AQP 대표는 벤앤제리스의 이런 결정이 미국 법률을 위반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미국에선 유대인과의 관계를 해치거나 무역활동을 보이콧하는 게 법으로 금지됐다.

AQP는 벤앤제리스와 유니레버가 웨스트뱅크 지역에 아이스크림을 팔지 못하도록 압박했다고 주장했다. 웨스트뱅크 판매를 막는 것은 불법이라고 반발하자 벤앤제리스 측에서 계약을 끝내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징거 대표는 “계약을 바로 돌려놓을 시간은 아직 남았다”며 “이스라엘 판매권을 갱신하고 아이스크림을 정치적 논쟁에서 분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벤앤제리스는 지난해 7월 이스라엘에서 만든 아이스크림을 웨스트뱅크 등 팔레스타인 지역에 팔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팔레스타인 단체들은 벤앤제리스 결정을 환영했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반발했다. 나프탈리 베네트 이스라엘 총리는 벤앤제리스를 ‘반이스라엘 아이스크림’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논란이 있은 뒤 뉴욕주는 주정부 연금이 보유하고 있던 유니레버 지분 1억1100만달러를 매각한다고 밝혔다.

유니레버는 2000년 벤앤제리스를 인수할 때 ‘독립 경영’을 약속했다. 벤앤제리스의 결정에 유니레버는 특별한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논란이 커지면 유니레버까지 영향을 받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유니레버는 이스라엘에 4개 공장을 운영하며 도브 등 여러 생활용품 브랜드를 판매하고 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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