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바다·하늘길 다 막혔다…"제3국 묶인 화물, 바다에 버려야 할 판"

입력 2022-03-06 17:28   수정 2022-03-07 01:19


“화주들을 안심시키고는 있지만, 사태가 어떻게 악화될지 몰라 난감한 상황입니다.” 국내 한 대형 종합물류업체 고객담당 부서엔 지난달 말부터 매일 수백 통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러시아를 관통하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에 화물을 실을 수 있는지 묻는 화주들의 전화다. TSR은 유럽까지 화물을 옮기기 위해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대기업뿐 아니라 수출 중소기업도 자주 활용하는 노선이다. 국내 대표 원양선사인 HMM에도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등 극동항로의 중단 여부를 묻는 전화다. HMM은 ‘러시아 보이콧’을 선언한 글로벌 선사들의 움직임에 조만간 동참할 계획이다.
피해 현실화된 국내 대·중소기업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물류대란이 악화하면서 국내 수출기업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6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 4일까지 1주일 새 이번 사태와 관련해 346건의 애로사항이 접수됐다. 대금 결제 문의가 55.8%로 가장 많았다. 물류·공급망 문의도 31.8%에 달했다. 무협 관계자는 “현지 고객사와 수출계약을 맺었는데 대금을 미처 받지 못했거나 제품을 보내지 못해 피해를 호소하는 중소기업이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무협에 따르면 휴대용 가스버너를 제조하는 B사는 당초 제품을 우크라이나 오데사항에서 고객사에 인도할 예정이었지만, 전쟁 발발로 터키에 화물이 묶여 있다. 터키에서 새로운 바이어를 찾고 있지만 현지 네트워크가 부족한 데다 장기 보관료도 내야 하는 상황이다. B사 관계자는 “차라리 화물을 바다에 버리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사례가 잇따르면서 정부에는 보관료 등 물류비 긴급 지원을 요청하는 중소기업들의 호소가 끊이지 않고 있다.

러시아에 진출한 국내 기업과 수출기업의 분쟁도 적지 않다. 국내 기계 부품업체인 C사는 현지에 진출한 국내 대형 고객사로부터 납품 차질에 따른 페널티를 내라는 공문을 받았다. C사 관계자는 “대형 고객사와의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페널티를 물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악화일로 육상물류…붕괴 위기
국내 산업계는 러시아와의 직접적인 교역 피해보다 물류대란에 따른 부품·원자재 공급망 타격을 더 우려하고 있다. 러시아의 주력 수출 품목인 원유, 나프타, 알루미늄 등 원자재뿐 아니라 현지에서 생산되는 자동차 부품 등 중간재도 발이 묶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기업들은 TSR 노선의 운행 중단으로 최대 교역국 중 하나인 유럽연합(EU)으로 향하는 물류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부산항만공사에 따르면 지난 1월 부산항 주요 교역 대상국 중 전년 동기 대비 가장 높은 환적 물동량 증가세를 기록한 국가는 러시아였다. 전년 동기 대비 58% 증가했다. 2020년 이후 연평균 증가율은 35%에 달한다. 부산항의 러시아 정기 노선 수는 15개로 전년 대비 세 배 이상 증가했다. 물류대란 장기화로 해상운임이 폭등하자 TSR을 이용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가는 복합운송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러시아가 물류허브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전쟁이 장기화하면 부산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항을 거쳐 TSR로 유럽으로 향하는 복합운송 시장이 붕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데사와 미콜라이우항 등 흑해 연안의 우크라이나 거점 항구들의 잇단 봉쇄에 따른 피해도 현실화하고 있다. 미콜라이우항에 있는 포스코인터내셔널의 곡물터미널 운영도 전면 중단됐다. 회사 관계자는 “물류가 전면 통제되면서 터미널 가동도 멈췄다”고 전했다.

글로벌 항공사들의 러시아·유럽 화물노선 결항도 잇따르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러시아를 통과하는 육상 및 항공물류가 차질을 빚으면서 가뜩이나 치솟은 해상운임이 더욱 급등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글로벌 컨테이너선 운임지수인 상하이컨테이너선운임지수(SCFI)는 지난 4일 4746.98로, 사상 최고치였던 지난 1월 초(5109.6)에 비해선 다소 하락했다. 다만 유럽으로 가는 화물이 몰리면서 작년을 능가하는 해운 물류대란이 빚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강경민/남정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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