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CEP을 통해 중국이 기대하는 것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에 대한 영향력 확대다. 중국의 대외무역은 코로나 팬데믹, 미·중 갈등 등 불확실성 속에서도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특히 아세안 국가와의 교역 비중 확대가 눈에 띈다. 아세안은 2019년 미국, 2020년 유럽연합(EU)을 연달아 제치고 중국 최대 교역 파트너로 올라섰다. 중국은 화교의 경제 영향력이 큰 이 지역에서 RCEP을 교두보로 삼아 시장지배적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하고자 한다.
두 번째는 일본과의 경제 교류 강화다. RCEP은 중·일 간 첫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주목받고 있다. 상무부는 RCEP 발효에 따라 일본이 중국에 수출하는 무관세 상품 비중이 현재 8%에서 86%로 확대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고, 언론들도 일본과의 무역 증가 효과에 대해 보도하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세 번째는 중국 주도의 거대 경제권 구축이다. 중국은 RCEP을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과 EU에 대응하는 3대 거대 경제권역으로 삼아 레버리지 효과를 누리고자 한다. 미국과 유럽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중국 경제의 ‘외순환(外循環)’성을 높이려는 목적이다.
마지막 네 번째는 아시아 지역 밸류체인(RVC·regional value chain) 새판 짜기다. 중국 내 각종 요소비용 상승, 미·중 디커플링 심화로 제조업의 동남아시아 이전이 빨라지는 상황에서 RCEP은 아시아 RVC 재편을 가속화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과 비중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 팬데믹과 미·중 통상분쟁이 장기화하면서 지난 30년간 세계 무역을 주도해온 글로벌 밸류체인(GVC)이 빠르게 지역화·블록화하고 있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GVC 참여도가 52%에 달해 세계 최상위 수준이다. 이미 중국, 아세안 등과 FTA를 체결한 한국 입장에서 RCEP이 갖는 함의는 당장 적용받을 수 있는 관세 혜택 향유보다 가치사슬 재편 과정에서 역내 기업 간 협력, 새롭게 재편될 RVC에서의 국가 역량 및 역할 강화가 중요하다는 시사점을 던져 준다.
아울러 시나브로 변화될 밸류체인에서 부각될 중국의 역할 변화에도 선제적·능동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공급망 매트릭스에서 중국은 생산기지로서뿐만 아니라 원자재, 중간재 공급자로서의 역할이 빠르게 부상하는 중이다.
한국으로서는 글로벌 공급망을 다원화해나가는 노력과 함께, RCEP을 계기로 지역적으로 성장 여력이 높은 아세안과의 관계 속에서 한국의 매개 중심성을 더욱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대외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완충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한 지역화 중심 전략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상생과 적극적인 현지 밸류체인 참여를 중시하는 지역화 전략은 시장대응력과 공급망 대처 능력을 높일 수 있고, 핵심 무역 파트너로서 G2와의 연결성 확보라는 차원에서도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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