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시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는 비판을 줄곧 받아왔다. 수요를 무시한 채 공급을 틀어막아 집값을 급등시켰다. 20대 대선 후보들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부동산 쇄신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다. 전문가들은 공급 확대에만 집착하면 오히려 시장을 불안하게 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도심 재건축 규제 완화 등 수요가 많은 지역과 상품부터 선제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얘기다.
규제 지역을 늘리면 늘릴수록, 다주택자를 옥죄면 옥죌수록 ‘풍선 효과’는 커졌다. 결국 출범 초기(2017년 5월) 약 6억700만원이었던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국민은행 월간통계 기준)은 지난달 12억6900만원으로 두 배 이상 치솟았다. 전국적으로도 74% 급등하며 아파트 평균 매매가가 5억5000만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전국 주택 가격은 1년 전보다 14.97% 올라 2002년(16.43%) 이후 19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전세시장은 매매시장보다 더 엉망이다. 임차료 상승폭을 5%로 제한한 전월세 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제 등 새 임대차법으로 인한 혼란이 법 시행 1년 반이 지나도록 잦아들지 않고 있다. 이제는 5년 전 매매가를 주고도 전세를 구할 수 없는 지역이 부지기수다. 전세가 급등, 다중가격 형성, 보증부 월세로의 전환 등 각종 부작용으로 ‘전세난민’에 이어 ‘월세난민’까지 대거 양산됐다.
두 후보 모두 ‘폭탄급 물량 공급’을 제시했지만 실질에선 차이가 있다. 이 후보는 무주택자가 저렴한 임대료로 직주근접성이 높은 곳에서 30년 이상 거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기본주택’ 등 공공주도 공급에 방점을 찍었다. 윤 후보는 재건축 규제 완화 등을 통한 민간 공급이 중심이다.
전문가들은 새 정부가 서울 도심 등에 우선순위를 두고 공급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미 집값 하락세가 시작돼서다. 대량 공급은 자칫 경착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공급 숫자에 연연하기보다 재건축 안전진단이나 부담금 완화 등을 통해 서울 중심지에 공급이 나올 것이라는 신호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4종 주거지역 도입 등은 자칫 장기 도시계획을 망쳐버릴 수 있다”고 했다.
임대차법 역시 오는 8월 시행 2년을 앞두고 제도 보완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은형 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2년 계약갱신기간을 마친 신규 계약물량이 대거 쏟아지면 전세가격을 자극할 것”이라며 “매매가격까지 불안해지기 전에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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