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 석탄을 모두 수입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에서 에너지를 생산하는 데 투자하는 것도 금지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공격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자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전면 차단하는 초강수를 꺼내 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제 유가는 급등했다. 연내 국제 유가가 역대 최고가를 뛰어넘어 배럴당 200달러까지 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이 일으킨 전쟁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일원이 되지 않겠다”며 “러시아가 전쟁 자금을 확보하는 데 강력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치는 유럽연합(EU) 등 동맹국과 함께 보조를 맞춘 기존 제재와 달리 미국 독자적으로 시행하는 제재다. 미국이 수입하는 원유 중 러시아산 비중은 3%가량이다. 러시아산 가스는 쓰지 않는다.
지금까지 미국은 러시아 경제에 큰 타격을 주되 서방 국가에 미치는 영향은 최소화하는 제재를 부과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는 러시아뿐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제 유가는 수직 상승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4월물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은 전날보다 3.6% 오른 배럴당 123.7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으로 2008년 8월 이후 최고가다. WTI 가격은 장중 8.4% 오른 배럴당 129.44달러를 기록했다. 브렌트유 가격도 한때 8% 상승해 배럴당 133.13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미 미국 내 휘발유 소매 가격은 사상 최고치를 뛰어넘었다. 이날 미국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미국의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전일보다 2.7% 오른 4.173달러로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EU는 가스의 90%, 석유제품의 97%를 수입한다. 러시아산 가스와 원유 수입 비중은 각각 40%, 25%에 이른다. 이 때문에 EU가 러시아 에너지 수입 금지 조치에 참여하면 유가가 폭등할 가능성이 크다.
EU 정상들은 10~11일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지만 의견이 갈려 결론을 내기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독일, 네덜란드가 러시아 원유 수입 금지에 반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은 유럽과 공조에 균열이 생긴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에너지 금수 조치에 많은 동맹이 동참하지 못하는 점을 이해한다”며 “러시아 압박 목표에 대해선 단합돼 있다”고 말했다. 에너지시장 정보 제공업체 ‘JTD 에너지 서비스 Pte’의 존 드리스콜 수석전략가는 블룸버그통신에 “한국과 일본 같은 미국의 다른 동맹국이 러시아 에너지 수입 금지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