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사 상품기획자(MD)의 하루는 늘 이메일과의 전쟁으로 시작된다. 입점을 문의하는 수백 통의 제안서를 읽는 게 그들의 주요 일과다. 성공 신화가 잇달아 나오면서 무신사에 올라타려는 패션 브랜드가 줄을 서 있어서다. 예일은 무신사에 입점한 지 1년 만에 연매출 100억원 고지를 넘었다. 그 덕분에 지난해 무신사 거래액은 2조원을 훌쩍 넘겼다. 신세계 강남점의 연간 거래액과 비슷한 규모다.
패션 생태계의 지형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 LF 등 제조 기반 패션 대기업과 백화점의 주도권이 약해지는 추세다. 패션 플랫폼과 수천 개의 ‘만인(萬人) 디자이너’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입어보고 사던 데서 벗어나 모바일 속 사진과 착용 후기를 보고 옷을 구매하는 등 소비 행태가 급변하고 있는 것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패션 플랫폼이 주목받는 이유는 성장성과 수익성에서 모두 합격점을 받고 있어서다. 무신사만 해도 2019년과 2020년에 각각 493억원, 455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지난해 거래액 3400억원을 달성한 W컨셉은 작년 1분기부터 흑자 전환했다. IMM프라이빗에쿼티가 W컨셉을 매각하고 나서 다시 1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카카오는 지난해 지그재그를 인수했다. 패션을 커머스 육성을 위한 핵심 콘텐츠로 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그재그는 AI전문가인 서정훈 창업자 등 IT엔지니어들이 주축이다.
수익성 측면에서 패션 스타트업은 과거 백화점의 ‘온라인 버전’으로 평가된다. 백화점은 공간을 빌려주는 대가로 30% 안팎의 수수료를 챙겼다. IB업계 관계자는 “보통 플랫폼의 가치는 거래액 등 외형뿐만 아니라 테이크레이트(판매액 중 플랫폼의 매출로 인식되는 금액 비율)로 평가된다”며 “전자제품 등 일상 용품이 5% 안팎이고, 신선식품이 10% 남짓인데 패션은 30%에 육박한다”고 설명했다.
동대문 기반 패션 플랫폼인 에이블리는 일정 입점 조건만 맞추면 누구나 옷을 판매할 수 있어 셀러들이 몰리고 있다. 판매자 중엔 10대 소녀도 있고 경력이 단절된 주부도 있다. 에이블리 관계자는 “자신만의 패션 철학만 있으면 누구나 브랜드를 창업할 수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에이블리의 2020년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66% 증가한 526억원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패션 소비 행태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 패션 플랫폼 관계자는 “네이버에서 원피스를 검색하면 대략 15만 건의 결과값이 나온다”며 “요즘 소비자는 목적과 시즌에 맞는 옷을 빠르게 구매하길 원하는데 패션 플랫폼들은 수많은 사진과 공유 후기를 제공함으로써 이 같은 수요를 충족시켜준다”고 설명했다. 무신사는 1000명의 ‘패션 인플루언서’를 관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이 올리는 체형별, 상황별 다양한 후기는 MZ세대를 끌어들이는 강력한 무기로 평가된다.
패션업계는 다양한 영역에서 이런 플랫폼이 나올 것으로 전망한다. 3050, 키즈 등에 이렇다 할 패션 앱이 없는 만큼 온라인 패션 시장이 성장할 가능성은 많이 남았다고 보고 있다. 무신사와 같은 플랫폼을 이용해 상품을 판매하던 삼성물산 등 대형 패션회사도 이들의 성공방식을 보고 자사몰을 개설해 상품을 직접 판매하고 있다.
배정철/박동휘 기자 bj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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