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당선인 측이 대통령 집무실을 서울 용산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힌 것을 두고 정치권이 들썩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졸속 이전을 하게 되면 큰 비용은 물론 불필요한 논란이 따를 것"이라고 비판했다. 윤 당선인 측이 풍수가의 자문을 받아 용산 이전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면서 '청와대 흉지' 논란까지 재연되는 모습이다.
윤호중 민주당 비대위원장은 17일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윤 당선인 측이 용산을 대통령 집무실로 논의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일설에는 풍수가의 자문에 의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며 "용산 땅은 대한민국 오욕의 역사가 있는 곳이다. 대통령이 꼭 청나라 군대, 일본 군대가 주둔했던 곳에 가야겠느냐"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 초대 국정상황실장 출신인 윤건영 민주당 의원도 "청와대 집무실을 현재 이전한다는 건 국민과 소통을 위한 건데 국방부 부지는 소통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말이 안 되는 것"이라며 "주객이 전도됐다"고 비판했다.
윤 당선인 측의 집무실 이전 추진이 '풍수 논란'으로 번지는 모습이다. 유명 건축가인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부 교수는 "예전에 한번 (용산) 국방부에 강연 차 한번 가본 적이 있는데, 제가 태어나서 봤던 뷰 중에 제일 좋았다"며 "저는 풍수지리를 잘 모르겠지만, '이런 데 대통령 집무실 같은 거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용산은 '배산임수'를 갖춘 지형으로, 많은 풍수가들이 풍수적으로 좋은 위치로 평가하고 있는 곳으로 전해졌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공약이 나온 건 30년이 넘은 일이다. 1992년 대선 때 김영삼 후보가 광화문 청사에 집무실을 마련하겠다고 처음 공약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대선 때 세종시 이전을 내걸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2년과 2017년 대선 때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 청사로 옮기겠다고 약속했었지만 보안과 비용, 업무 효율성 등 여러 이유로 모두 불발됐다.
문 대통령의 집무실 이전을 검토하던 당시 유홍준 광화문대통령시대위원회 자문위원은 2019년 '집무실 광화문 이전' 보류를 발표하면서 "풍수상의 불길한 점을 생각할 적에 (청와대를) 옮겨야 한다"고 발언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유 위원의 이 말에 기자들이 "풍수상 불길한 점의 근거가 무엇인가"라고 묻자 그는 근거는 대지 않은 채 "수많은 근거가 있다"고만 답했다. 문 대통령 후보 시절 캠프에 참여했던 건축가 승효상 씨도 청와대 강연에서 "청와대 관저는 풍수지리학적으로 문제가 있어 옮겨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홍준 위원의 '풍수 발언'에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잠꼬대 같은 소리' '뜬금없는 얘기' 등의 표현을 써가며 강하게 비판했다. 당시 이양수 원내대변인은 "우주탐사를 하는 첨단 과학의 시대에, 대통령 자문위원이 뜬금없는 비과학적인 얘기를 청와대 집무실 이전 문제와 연관 지어 설명했다"고 지적했다. '공수'만 바뀌었을뿐 지금 정치권에서 재연되고 있는 '풍수논쟁'과 거의 비슷하다.
역대 대통령들이 비극적으로 임기를 마치거나 측근 비리가 터질 때마다 '청와대 터가 문제다'라는 이야기가 돈 것 역시 30년이 넘었다. '청와대 흉지론'을 공론화한 사람은 풍수 전문가인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로 전해진다. 최 전 교수는 1992년 한 일간지에 "청와대 터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삶터가 아니라 죽은 영혼들의 영주처이거나 신의 거처"라고 주장했다.
청와대 '풍수논쟁'이 대통령 집무실 이전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업무 효율성과 소통 가능성, 보안, 이전 비용 등 핵심을 덮어버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건축 전문가인 김진애 전 열린민주당 의원은 "일부에서 (청와대 자리가) 풍수가 안 좋다, 거기에 있으니까 뭐 대통령의 말로가 안 좋다, 이런 얘기들을 하는데, 풍수가 나쁘더라도 다스릴 수 있는 게 좋은 도시고, 좋은 건축"이라고 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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