펩타이드로 의약품을 만들면 합성 의약품보다 생체 친화적이면서 강한 효과를 발휘한다. 인류 최초의 펩타이드 신약이 바로 당뇨병 치료제 인슐린이다. 1920년대 처음 등장한 인슐린은 당시 기적의 약으로 불렸다. 2000년대 들어선 다국적 제약사 로슈가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치료제를 펩타이드 기반으로 선보이면서 주목받았다.
문제일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뇌인지과학전공 교수와 계명대 의대 이성용 교수 공동 연구팀은 생체 호르몬인 에리트로포이에틴(EPO) 구조를 변형시킨 펩타이드 유도체를 제작해 부작용을 최소화한 뇌졸중 치료제 후보물질을 개발했다고 18일 밝혔다.
뇌졸중은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막히거나 터져 사망하거나 뇌손상 후유증이 남는 질환이다. 2018년 국민건강보험공단 통계에 따르면 국내 전체 사망 원인 중 4위, 단일 질환으론 1위다.
EPO는 적혈구 생성에 관여하는 호르몬이다. 뇌 등 다양한 조직에서 저산소 스트레스 등으로부터 세포를 보호한다. 그동안 이 기능을 활용해 뇌졸중 치료제 개발이 이뤄져 왔으나, 과도한 적혈구 생성이나 종양 유발 등 부작용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다.
문 교수팀은 EPO의 다양한 기능이 EPO 수용체 활성에 따라 조절된다는 가설을 세웠다. 그리고 EPO 수용체와 관련된 주요 부위인 나선구조C(헬릭스 C)를 변형한 다양한 펩타이드를 디자인했다. 이렇게 디자인한 펩타이드들을 약물 후보물질로 합성해 세포 보호 효과를 검증했다.
그 결과 뇌졸중 치료제 후보물질 ML1-h3를 새로 발굴했다. 이를 허혈성 뇌손상이 유발된 동물에 투여해 보니 EPO와 비슷하게 신경세포 사멸을 막아 뇌손상 진행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한 달간 장기 투여해도 EPO와 달리 적혈구 과다 생성, 종양 생성 등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았다.
문 교수는 “환자들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적은 생체 유래 단백질 호르몬을 새로 디자인해 신약을 개발할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최제민 한양대 생명과학과 교수 연구팀은 다발성경화증 등 자가면역 질환을 완화할 수 있는 펩타이드를 개발했다. 자가면역질환은 면역세포가 과도하게 활성화돼 정상 세포를 공격하는 질환이다. 면역세포 활성을 조절하는 조절T세포가 많이 줄어 있어 이를 증가시키는 것이 관건이다.
연구팀은 조절T세포에 다량 존재하는 단백질 CLTA-4에 세포막을 잘 통과할 수 있는 단백질 조각을 연결한 펩타이드를 설계했다. 이 펩타이드를 다발성경화증에 걸린 동물에 투여하자 생체 내에서 조절T세포가 늘어나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팀 관계자는 “다발성 경화증뿐 아니라 류머티즘 관절염, 제1형 당뇨, 알츠하이머(치매), 건선, 크론병 등 다양한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개발에 실마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안전성을 최대로 높일 수 있는 펩타이드 서열 도출을 위한 추가 연구와 임상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문 교수팀과 최 교수팀의 펩타이드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았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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