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집무실을 서울 용산으로 옮기기 위해 내건 명분은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윤 당선인은 “청와대에 들어가면 그 공간의 지배를 받고 기존에 해오던 대로 할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말했다. 기존 청와대가 ‘조선 총독부 때부터 100년 이상 써온 장소’라는 구체적인 이유도 곁들였다.
청와대와 백악관의 또 다른 차이는 위치다. 북악산 기슭에 있는 청와대와 달리 백악관은 워싱턴DC의 도심에 있다. 남쪽을 뺀 3면이 연방정부 건물이나 일반 건물에 둘러싸여 있다. 남쪽에도 일반 시민들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내셔널 몰’로 불리는 대형 공원이 있다. 주변 건물 옥상에서 백악관 건물이 내려다보일 정도다. 주변이 엄격한 층고 제한으로 묶여 있는 청와대와 다르다.
이런 점 때문에 역대 대통령들도 청와대 이전을 추진했다. 모두 구중궁궐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보안과 경호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김 전 대통령은 광화문으로 집무실을 옮기지 못하고 청와대 주변 도로를 개방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광화문 집무실을 추진하다가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선에서 타협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서울청사 별관에 집무실을 옮기려다가 국회 승인 문제 때문에 중단했다.
윤 당선인은 이런 실패 사례를 참고해 광화문이 아니라 용산 국방부 청사를 선택했다. 보안 관리가 잘 돼 있는 군 관련 건물의 특성상 경호상 이점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부지가 넓어 백악관과 비슷한 대통령 집무실을 차릴 수 있는 점을 높이 샀다. 윤 대통령이 꿈꾸는 대로 반려견인 토리를 데리고 다니는 모습을 산책 나온 국민이 볼 수 있다. 하지만 백악관 같은 수평적이고 투명한 근무 환경은 건물의 위치나 구조보다 운영에 달려 있다.
윤 당선인도 느끼는 것처럼 무엇보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이 급조됐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윤 당선인의 당선 이후 외부 인사의 제안으로 용산 이전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국민 여론을 들을 시간은 당연히 부족했다. 누구보다 빠른 군인들 덕분에 ‘봄꽃이 지기 전’에 용산 이사를 완료할 수 있다. 하지만 ‘낙엽이 지기 전’에 모든 혼란을 수습할 수 있을지는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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