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백악관 공간이 의식을 지배했을까

입력 2022-03-21 17:03   수정 2022-03-22 00:21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결정한 청와대 이전의 핵심은 ‘봄꽃이 지기 전에’다. 윤 당선인 측 김은혜 대변인이 지난 18일 “봄꽃이 지기 전엔 국민 여러분께 청와대를 돌려드리겠다”고 한 발언이 시작이다. 윤 당선인도 20일 “결국 (청와대에) 들어가면 이전이 안 된다고 본다”며 속전속결의 결기를 보였다.

대통령 집무실을 서울 용산으로 옮기기 위해 내건 명분은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윤 당선인은 “청와대에 들어가면 그 공간의 지배를 받고 기존에 해오던 대로 할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말했다. 기존 청와대가 ‘조선 총독부 때부터 100년 이상 써온 장소’라는 구체적인 이유도 곁들였다.
일사천리로 청와대 이전 추진
일본 식민지 시대의 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참고한 대통령 집무실 모델은 백악관이다. 구체적으로 미국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는 ‘웨스트윙’이다. 웨스트윙은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와 내각 회의실, 부통령실, 비서실장실, 대변인실이 한 층에 모여 있다. 기자실과 브리핑룸도 웨스트윙의 서쪽과 붙어 있는 1층짜리 건물에 자리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웨스트윙은 대통령과 핵심 참모, 언론이 같은 층에 있는 수평적 구조다. 반면 청와대는 대통령 집무실과 참모 사무실, 기자실이 모두 따로 떨어져 있고 층도 다르다.

청와대와 백악관의 또 다른 차이는 위치다. 북악산 기슭에 있는 청와대와 달리 백악관은 워싱턴DC의 도심에 있다. 남쪽을 뺀 3면이 연방정부 건물이나 일반 건물에 둘러싸여 있다. 남쪽에도 일반 시민들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내셔널 몰’로 불리는 대형 공원이 있다. 주변 건물 옥상에서 백악관 건물이 내려다보일 정도다. 주변이 엄격한 층고 제한으로 묶여 있는 청와대와 다르다.

이런 점 때문에 역대 대통령들도 청와대 이전을 추진했다. 모두 구중궁궐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보안과 경호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김 전 대통령은 광화문으로 집무실을 옮기지 못하고 청와대 주변 도로를 개방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광화문 집무실을 추진하다가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선에서 타협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서울청사 별관에 집무실을 옮기려다가 국회 승인 문제 때문에 중단했다.
낙엽 지기 전에 혼란 끝날까
문재인 대통령은 그 누구보다 광화문 집무실에 애착을 보였다. 그러나 취임 3년 만에 “광화문 인근에 대체 부지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중도 포기했다.

윤 당선인은 이런 실패 사례를 참고해 광화문이 아니라 용산 국방부 청사를 선택했다. 보안 관리가 잘 돼 있는 군 관련 건물의 특성상 경호상 이점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부지가 넓어 백악관과 비슷한 대통령 집무실을 차릴 수 있는 점을 높이 샀다. 윤 대통령이 꿈꾸는 대로 반려견인 토리를 데리고 다니는 모습을 산책 나온 국민이 볼 수 있다. 하지만 백악관 같은 수평적이고 투명한 근무 환경은 건물의 위치나 구조보다 운영에 달려 있다.

윤 당선인도 느끼는 것처럼 무엇보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이 급조됐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윤 당선인의 당선 이후 외부 인사의 제안으로 용산 이전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국민 여론을 들을 시간은 당연히 부족했다. 누구보다 빠른 군인들 덕분에 ‘봄꽃이 지기 전’에 용산 이사를 완료할 수 있다. 하지만 ‘낙엽이 지기 전’에 모든 혼란을 수습할 수 있을지는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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