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근로자의 은퇴연령이 점점 늦어지고 있지만, 기술개발과 연공급제 등으로 인해 고령 근로자에 대한 수요는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고령자들이 질 낮은 일자리로 향하게 된다는 분석도 함께 제시됐다.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는 25일 이슈브리프(일문일답 제11호)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을 밝혔다.
◆은퇴 시점, OECD 평균보다 7년 뒤
인구고령화의 급격한 진행으로 2018년부터 15~64세 생산연령인구는 계속 감소하고 있다. 특히 710만명에 달하는 베이비붐 세대가 2024년부터는 정년에 도래하면서, 인구구조의 변동 폭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결국 노인부양부담이 증가하면서 근로자들이 점점 늦은 나이까지 일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은퇴연령은 72.3세로 OECD 평균에 비해 7년 정도 높아 상대적으로 장기간 경제활동에 종사하고 있었다. 또 55~64세 사이 고용률은 OECD 평균보다 높았으며, 65~69세 고용률(50.4%)은 OECD 평균(20.8%)의 2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에서 평균 근속 기간은 15년 2개월에 불과했다. 정년 60세 법제화에도 불구하고 55세 이상 취업자의 상당수는 정년 전에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해 다른 일자리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일터를 떠나는 이유가 늦어지는 이유는 결국 경제적 문제였다. 고령기의 소득 감소와 높은 노인빈곤율이 노동시장 참여를 높이는 주요 원인이었으며, 자녀 등의 부모 부양률이 낮아지는 것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는 설명이다.
자녀 및 가족의 노부모 부양은 2011년 32.0%에서 2021년 14.1%로 크게 낮아졌다. 또 40대 이전에 10% 미만이었던 빈곤율도 50대 이후 증가해 65세 이상 인구의 절반가량이 중위소득의 50% 미만인 빈곤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5세 이상 고령자 중 재취업을 희망하는 사람의 비율도 68.1%에 이르렀다. 2021년 고령층부가조사 결과 재취업 희망자 중 희망 사유로 "생활비 보탬" 등 생계 이유라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은 58.7%에 이르렀다.
◆기술변화, 연공급제 탓에 고령자 원하는 기업 줄어
재취업을 원하는 고령자들이 많은 데 비해, 고령자를 필요로 하는 일자리는 적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산업구조와 변화가 가장 큰 이유라는 설명이다. 4차 산업혁명 등의 영향으로 ICT기반 문제해결력 등이 필수 직무능력이 됐지만, 55세 이상이 이런 분야의 훈련에 참여하는 비율은 타연령대에 비해 크게 낮았다. 또 해당 직무능력을 갖춘 근로자도 장년층에서는 크게 적어 '연령 격차'가 크다는 분석도 나왔다.
연공급제도 또 다른 이유였다. 2018년 기준으로 근속연수별 임금격차를 분석한 결과, 근속연수 1년 미만 근로자들의 임금에 비해 근속연수 20~29년 사이의 근로자들의 임금은 독일(1.69배)이나 영국(1.44배), 일본(2.26배)에 비해 한국이 현저히 높은 수준(2.86배)으로 나타났다. 이런 '연공성' 탓에 기업들의 고령자 고용유지를 부담으로 느끼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결국 고령자 고용의 질이 낮아지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노동시장 참여 희망은 여전히 높은데도 일자리 질은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50세 이상 근로자는 상용직 비중이 작고 임시일용직이나 자영업자 비중이 높았다. 전 연령에서 상용근로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54.6%였지만, 50세 이상만 놓고 보면 39.7%에 그쳤다.
또 50세 이상 근로자들은 주로 단순노무(22.1%), 서비스(12.8%), 장치기계조작(12.3%)등에 종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화가 진행될 경우 가장 먼저 일자리를 잃게 될 가능성이 높은 직종이다.
일자리위원회는 "민간부문 일자리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고용·임금체계 유연화 등 제도개선을 통한 사전 준비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며 "기업의 고령자 채용, 고용유지 부담을 완화하는 인센티브 지원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한 고용정책 전문가는 "일자리위원회도 인정하듯 결국 자연스럽게 고령자에 대한 수요를 늘리기 위해서는 연공급제 개선 등 근본적인 대첵이 필요하다"며 "현재 일자리위원회의 고민은 실업급여 제도개선, 근로시간 단축 청구권 등 고용안정성 보장에 치중돼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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