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新舊) 권력 갈등이 현직 대통령과 차기 대통령 간 감정싸움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윤 당선인은 이날 서울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로 출근하는 길에 기자들과 만나 ‘청와대와의 인사권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원칙적으로 차기 정부와 일해야 할 사람을 마지막에 인사 조치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이 전날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담당 국장을 한은 총재로 지명한 인사와 관련해서는 “새 정부와 장기간 일해야 할 사람을, 인사가 급한 것도 아닌데, 원론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청와대와 인수위는 한은 총재를 비롯해 감사원 감사위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등의 인사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윤 당선인의 이 같은 언급이 나온 직후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윤 당선인과의 회동과 관련해 “답답해서 한번 더 말씀드린다”고 한 문 대통령의 발언을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참모회의에서 “나는 곧 물러날 대통령이고, 윤 당선인은 새 대통령이 될 분”이라며 “두 사람이 만나 인사하고 덕담 나누고 혹시 참고될 만한 말을 주고받는 데 무슨 협상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무슨 회담을 하는 것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문 대통령은 “당선인이 대통령을 예방하는 데 협상과 조건이 필요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며 “다른 이들의 말을 듣지 말고 당선인이 직접 판단해 주기 바란다”고 윤 당선인에게 촉구했다.
더 꼬이는 신·구 권력 갈등
윤 당선인은 문 대통령의 인사를 부동산 매매계약에 비유하며 작심 발언을 이어갔다. 윤 당선인은 “당선인은 부동산 매매 계약에서 대금을 다 지불하고 명도만 남아 있는 상태(매수인)”라며 “(매수인이) 곧 들어가 살아야 하는데 아무리 법률적 권한이 매도인(기존 집주인)에게 있더라도 들어와 살 사람의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본인(매도인)이 살면서 관리하는 데 필요한 조치는 하지만 집을 고치거나 이런 건 잘 안 하지 않느냐”고 반문한 뒤 “인사가 급한 것도 아닌데 원론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당선인 발언이 나온 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오전 참모들과의 회의에서 나온 문 대통령의 발언을 공개했다. 문 대통령은 “나는 곧 물러날 대통령이고, 윤 당선인은 새 대통령이 되실 분”이라며 “두 사람이 만나서 인사하고 덕담을 하고, 혹시 참고가 될 만한 말을 주고받는데 무슨 협상이 필요한가”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답답해서 한 말씀 더 드린다”며 “(윤 당선인은) 다른 이들의 말을 듣지 말고 당선인께서 직접 판단해주시기 바란다”고도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문 대통령 발언에 대해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들이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이나 인사권 문제를 들고나와 회동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김 대변인은 “코로나19와 경제위기 대응이 긴요한 때에 두 분의 만남을 덕담 나누는 자리 정도로 평가한 것에 대해서도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는 한은 총재 등 인사권 행사를 놓고 빚어진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충돌이 두 사람 간 감정적 대립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이날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분명한 것은 인사는 대통령의 임기까지 대통령의 몫”이라며 “찾아보면 아시겠지만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도 마지막까지 인사를 했다”고 했다.
김 대변인은 “저희는 차기 대통령이 결정되면 인사를 하지 않겠다”고 응수했다. 그는 “대선이 끝나고 나면 가급적 인사를 동결하고, 새로운 정부가 새로운 인사들과 함께 새로운 국정을 시작할 수 있도록 협력하는 것이 그간의 관행이자 순리”라고 했다.
한편 윤 당선인은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을 공약한 것에 대해 “제가 부산으로 본점을 이전시킨다고 약속했으니까 지킬 것”이라고 못 박았다. 윤 당선인은 “가급적 이른 시일 내 옮기는 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라면서도 “선거 때 표를 얻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번복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윤 당선인은 “공약인데 그럼 내가 선거 때 국민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이야기인가”라며 일축했다.
임도원/오형주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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