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의 사진 거장, 아시아 첫 개인전

입력 2022-03-27 17:20   수정 2022-03-29 09:16

1966년 영국의 종합문화잡지 ‘드럼’의 표지에 사진 하나가 실렸다. 런던 트래펄가 광장에서 자신만만한 표정의 흑인 여성이 고급스러운 옷을 차려입고 새들과 함께 노니는 모습을 찍은 흑백 사진이었다. 사진은 흑인 이주민들이 모두 가난하고 불행할 것이라는 당시 런던 시민들의 편견에 균열을 냈다. 가나 출신 세계적인 사진작가 제임스 바너(93)가 찍은 ‘트래펄가 광장의 에를린 이브렉’(사진) 얘기다.

서울 삼청동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 바너의 아시아 첫 개인전 ‘에버 영(Ever young)’이 열리고 있다. 그의 1950~1980년대 주요 작품 34점을 소개하는 전시다. 1929년 가나의 수도 아크라에서 태어난 바너는 아프리카 대륙 출신 최초로 전업 사진작가가 됐고, 이후 식민지배에서의 해방 등 급변하는 가나의 사회상을 사진에 담아냈다. 전시에 나온 ‘남성 배우로만 구성된 올라스 코미디언들’(1953~1954)은 70여 년 전에 찍은 사진이지만 지금 봐도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1960년대에는 영국 런던으로 이주해 흑인 디아스포라 문화를 기록한 사진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디아스포라는 본토를 떠나 타지에서 자신들의 규범과 관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민족 집단이나 거주지를 가리키는 용어다. 전시장에서는 바너가 찍은 이주민의 다양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머나먼 이국에서도 정체성과 긍지를 잃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인상 깊다.

1970년대 고국으로 돌아간 바너는 가나 최초로 컬러사진 기술을 도입한 스튜디오를 세우고 일상적인 풍경을 필름에 담았다. ‘인형을 든 어린 소녀’(1972)가 이 시기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1993년부터는 영국에서 살며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70여 년간 꾸준히 작품활동을 해온 그가 본격적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게 된 계기는 2010년 미국 보스턴 루덴스타인 갤러리에서 연 회고전이다. 당시 미술계는 그의 작품에 “식민지 시기 이후 인종과 근대성의 문제 그 자체를 기록한 역사”라는 찬사를 보냈다. 지난해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에서 열린 회고전은 그의 명성을 더욱 드높였다. 뉴욕현대미술관(MoMA), 파리 퐁피두센터, 영국 테이트모던 등 여러 유력 기관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전시는 5월 8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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