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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미국 측 인사가 한국의 '외교통상부' 출범에 부정적인 의사를 전한 시기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10주년을 맞아 한국의 정부·국회 대표단이 지난 14~1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했을 때다. 당시 대표단엔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과 이학영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대표단에 합류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미국의 한국 담당 고위급 외교 인사가 한국의 통상교섭 기능의 외교부 이관에 우려한다는 뜻을 구두로 전해왔다"고 말했다.
미국이 이 같은 입장을 한국에 전한 이유는 한국의 통상교섭본부가 외교부로 옮겨가면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반중 경제안보 동맹체인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출범 구상에 차질이 생긴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IPEF의 핵심 의제는 반도체 등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는 일이다. 미국은 한국 외교부가 공급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대기업과의 네트워크도 산업부와 비교해 빈약해 외교부로 통상교섭 기능이 넘어가면 한국이 IPEF 논의에 적극 참여하기엔 한계가 뚜렷하다는 우려를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정부에 미국 정부 인사의 입장을 전한 국내 민간 전문가는 “미국은 공급망 재편을 중심으로 하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의 구체적 의제 설정 과정에서 한국이 중추적 역할을 맡아주길 바라고 있다”며 “외교부는 통상교섭 기능을 옮겨받아도 구체적 공급망 논의를 할 능력이 없다는 게 미국 정부의 시각”이라고 말했다.
특히 미국은 IPEF 출범 과정에서 한국이 미국과 같은 선진국과 아세안(ASEAN) 등의 개발도상국 사이에서 중간조율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것으로 전해졌다.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빠르게 성장한 한국이 미국 중심으로 편성될 IPEF의 당위성을 설파해주는 동시에 개도국과 선진국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정해주는 데 적격이란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 통상조직 이관으로 인해 내부적으로 뒤숭숭한 분위기가 이어지면 IPEF 출범 과정에서 미국이 바라는 역할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위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자국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IPEF 출범 시기를 최대한 앞당기려 한다는 점도 한국의 외교통상부 출범에 미국이 부정적 의사를 표시한 중요한 이유로 꼽힌다. 미국은 올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최소한 5~6월까지는 자국 표심에 도움이 되는 '반중' 어젠다인 IPEF 논의를 구체화하길 원한다는 게 복수의 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미국은 한국의 대통령 선거를 전후로 대선 결과가 한국의 IEPF 참여 결정과 논의에 영향을 주지 않을지 지속적으로 우려를 표해왔다”고 말했다.
산업부의 통상 기능 이전 논란에 우려를 표명한 미국 측 인사의 의견은 미국 정부의 기류를 반영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통상 분야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미국이 '외교적 릴레이션(relation·관계)을 고려해 민간 전문가를 통해 한국 정부에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산업부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한국의 정부조직 개편에 입장을 가질 수 없고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전달할 수는 없다"며 "워싱턴에서 미국 정부 인사가 우리 측 민간 전문가에게 한 말은 사견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미국이 한국의 IPEF 참여를 절실히 원하는 현재의 상황이 한국에겐 오히려 기회라는 분석도 나온다. 제조업 강국인 동시에 개도국과 선진국 사이의 중간자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한국이 IPEF 논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 향후 재편될 수밖에 없는 글로벌 공급망 논의에서 국내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IPEF 논의를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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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재와 같이 산업부와 외교부가 통상교섭 기능의 이관 여부를 놓고 다툼을 벌이는 상황이 지속되면 글로벌 공급망 재편 논의에서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강문성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는 “통상교섭 업무는 개별 공무원의 노하우 축적이 가장 중요한데, 소속 조직이 자주 바뀌면 협상력과 전문성 하락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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