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주의의 등장을 경계한 책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레비츠키·지블랫 공저)에서도 제도적으로 가능한 권리를 행사할 때 신중함을 잃지 않는 ‘자제력’이 중요하다며 루스벨트 예를 들었다. 헌법 조문만으로는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기 어려우며, 불문율이라 하더라도 최상위 정치 규범은 존중돼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이는 전대미문의 신구(新舊) 권력 갈등이 벌어진 한국 정치권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선거에서 석패(惜敗)했다고 해도 물러나는 정권이 법 형식논리만 따지고 인사권 등이 아직 자기들에게 있다고 강변한 것은 민주주의 전통과 원리에 맞지 않는다. 그제 ‘문-윤 회동’의 성과로 갈등 해소의 전기는 마련됐지만, 언제든 다시 불붙을 위험성이 다분하다.
이런 점에서 문재인 정권의 이해하기 어려운 행태가 대체 어디서 비롯됐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힌트는 문 대통령의 지난 3·1절 기념사 속에 있다. 현 정부를 ‘민주정부 3기’라고 지칭한 게 그것이다. 문재인 정부 사람들은 아직도 세상을 ‘민주 대 반(反)민주’ 대결 구도로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이제 민주화 임무가 완수됐다며 여권 유력인사가 정계은퇴를 선언했지만, 대부분은 동의하지 않는 듯하다. 기득권 세력은 강력하고 민주 세력은 여전히 ‘소수파’라는 의식에 아직 갇혀 있다. 지난번 총선에서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했고, 대선에서 40~50대 지지세를 확인했음에도 변함이 없다. 그러니 타협이나 협상은 설 자리가 없고, 오로지 투쟁만 있을 뿐이다.
이래서는 소수여당이 먼저 팔을 뻗어도 협치(協治)는 언감생심이다. 합법을 빙자한 극단과 대결로 치달을 공산이 적지 않다. 그만큼 민주주의의 기초는 허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민주당도 자신들의 진지에서 나와야 한다. 동시에 루스벨트에 대한 환상에서도 깨어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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