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주의 노선 선택은 정보기술(IT) 분야 등 젊은 세대 비중이 높은 업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경기 판교에 있는 근로자 2200여 명 규모의 한 대형 IT 기업 인사담당자는 “임금 협상 시기인 12월이 되면 300명대이던 노조 가입자가 100명 정도 늘었다가 협상이 종료되는 3월께 우르르 빠져나간다”며 “임금 협상 때 노조에 힘을 실어주고 협상이 끝나면 조합비를 아끼려 탈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현상은 2019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 1월 유명 대형마트의 노조는 투쟁의 일환으로 계산원 조합원(캐셔)들에게 야간 근로 금지 방침을 내려보냈지만, 일부 조합원이 “야간수당이 줄어든다”고 반발해 노조 방침을 어기고 근무한 사례도 있었다.
근로자들이 노조를 연대 중심의 공동체가 아닌, 자신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 보는 분위기가 점차 강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저임금 직종 근로자들이 조합비 5000원 차이 때문에 노조를 갈아타는 일도 빈번하다. 노조 가입을 ‘저렴하고 질 좋은 서비스’를 선택하는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다.
청소·서비스업 분야의 산별노조 간부는 “가끔 노조 간부가 서비스센터 직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며 “노동운동을 오래 한 활동가들이 자괴감을 느낄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이런 분위기 때문에 노동운동이 전체적으로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와 반대로 노동운동의 흐름이 합리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일 뿐 노조나 노동운동의 약화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해 6월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이 2030세대 직장인 862명을 대상으로 노조의 필요성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80.6%는 ‘노조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노조의 필요성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 것이다. 2020년 전체 노조 조직률도 14.2%로 25년 만에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MZ세대의 노동운동은 합리적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이익 앞에서는 철저히 폐쇄적으로 변한다는 점에서 이중적인 면모가 있다”고 설명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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