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가계부채 문제를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증가 속도가 유독 빠른 데다 질까지 나빠지는 가계부채가 경기를 옥죌 수 있다고도 했다. 금융시장은 이 후보자의 발언을 ‘매파(긴축적 통화정책 선호)적’으로 해석했다. 이 후보자의 발언이 알려지자 국채 시장에서 3년 만기 국채 금리가 0.121%포인트 오른 연 2.784%에 마감했다. 이 후보자는 그러나 “데이터 변화에 따라 비둘기파(완화적 통화정책 선호)도 매파도 될 수 있다”며 경제·금융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통화정책을 운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국의 가계부채(가계신용)는 작년 말 1862조653억원으로 1년 만에 134조1493억원 늘었다. 연간 증가폭으로는 대출 규제를 푼 2016년(139조4276억원)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크다. 이 후보자가 가계부채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균형금리를 언급한 만큼 한은의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가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열린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올해 두세 차례 추가 금리 인상을 시사했다.
이 후보자는 “가계부채는 중장기적으로 부담이 크고 성장률을 갉아먹을 수도 있다”며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은퇴자들이 생활자금 마련을 위한 차입금을 늘리고, 그만큼 가계부채의 질이 나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통화정책 방향에 대해선 ‘3C(comprehensive·consistent·coordinated, 포괄적이고 일관되며 조화로운 통화정책)’를 강조했다. 그는 “통화정책은 재정정책과 구조조정정책을 전반적으로 다 같이 보는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협력해서 전개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미국 기준금리가 한국보다 높은 ‘한·미 금리 역전’ 가능성에는 “미국의 정책금리 인상 속도가 빠른 만큼 금리가 역전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을 고려할 때 금리 역전이 자본유출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원화 가치 절하(원·달러 환율 상승)가 물가에 미칠 영향이 더 우려된다”고 했다. 미국 정책금리 인상으로 원·달러 환율이 뛰면 원화로 환산한 수입물가도 치솟을 수 있다는 우려를 드러낸 것이다.
이 후보자는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대해서는 “상반기는 3.1%를 웃돌겠지만, 하반기는 예측하기 어렵다”며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리스크 관리에 치중하겠다”고 말했다. 한은과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한국의 물가 상승률을 11년 만에 가장 높은 3.1%로 전망하고 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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