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유럽, 미국에 잇따라 공장 신설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자국 정부 보조금을 바탕으로 ‘안방’ 시장에서 벌어들인 이익으로 글로벌 시장에 발을 넓히고 있다. 중국 기업의 주 제품인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원하는 글로벌 완성차 업계 수요가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한국 배터리 3사가 생산하는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는 원자재(니켈, 코발트 등) 가격 급등으로 가격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 올 들어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크게 좁아진 한국 배터리 업체의 입지가 앞으로 더 위협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배터리 탑재량이 크게 늘어난 이유는 LFP의 가격 경쟁력 덕이다. 에너지 밀도는 낮지만 값싼 재료를 이용해 NCM에 비해 20% 가량 저렴하다. 완성차 업체들이 올해 중저가 전기차 출시를 서두르고 있어 LFP 점유율이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배터리 업체들은 주요 양극재 가격에 따라 납품가를 조정하는데, LFP는 NCM보다 가격 변동폭이 안정적이다. 게다가 중국이 전세계 희토류를 58% 이상 생산하는 만큼 ‘자원 무기화’ 국면이 닥쳐도 안정적으로 원료 공급이 가능하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점유율 10위인 중국 EVE에너지는 최근 헝가리에 원통형 배터리 셀 공장을 짓겠다고 밝혔다. EVE에너지는 지난해 BMW가 80억유로(약 10조7000억원) 규모로 발주한 배터리 공급업체 중 하나로 선정됐다. 이를 계기로 전기차 판매가 급증하는 유럽에서 점유율을 늘리겠다는 방침이다. 헝가리에 거점을 이미 확보한 삼성SDI, SK온과의 납품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점유율 8위 중국 궈쉬안은 독일의 보쉬 공장을 인수해 첫 해외 생산기지를 구축할 계획이다.
CATL은 올해 독일에 배터리 공장을 완공해 2025년까지 연 100GWh 생산능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독일은 최근 양산을 시작한 테슬라 기가팩토리뿐 아니라 설립 예정인 폭스바겐이 전기차 전용 공장 등 수요가 많은 곳이다.
북미에도 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진출하고 있다. CATL은 50억달러(약 6조원)를 투자해 북미에 80GWh 규모 배터리 셀 공장을 처음으로 지을 계획이다. 궈쉬안도 북미에 배터리 공장 건설을 계획 중이다. 중국 엔비전AESC는 르노와 프랑스에 생산 거점(30GWh)을 짓고 메르세데스벤츠와 미국에 배터리 합작공장을 구축하기로 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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