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에너지산업 지도' 새롭게 쓸 때다

입력 2022-04-03 17:38   수정 2022-04-04 00:03

구조 개편은 오랫동안 에너지 정책에서 금기어다. 미국, 유럽, 일본 같은 선진국은 물론 개도국에서도 구조 개편이 일상화했으나 우리는 장기 검토 과제 정도로 분류될 뿐 시급성을 갖고 다뤄지지 않았다. 이제 선진국에 진입해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해야 하고 4차 산업혁명 선도국이 되겠다는 비전을 발표하면서 왜 이럴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들이 수소경제에 향후 10년 동안 43조원을 투자하겠다고 하고, 민간에너지 회사들이 에너지 전환 대응을 위해 사업 전환에 발버둥을 치는데도 왜 애써 외면하는 것일까?

우리 에너지 시장이 현재 공기업 주도의 독점과 전기, 가스, 석유 등 분업구조가 정착한 것은 1960년대 경제개발 추진의 유산이다. 당시는 민간의 역량이 없어서 정부가 중심이 돼 고도성장에 필요한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했기 때문이다.

최대 공기업이자 우리 에너지 산업의 산 역사인 한국전력이 대표적이다. 해방 이후 지역별 3사 체제를 유지하던 전력회사를 1961년 한국전력주식회사로 통합하고 대대적인 발전소 건설에 착수했다. 1980년대 들어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다른 에너지에 비해 전력 수요가 상대적으로 급증했다. 이에 한전은 투자 재원 부족, 입지 확보 등이 어려워지자 1990년대 들어 제한적으로 민간의 발전소 건설을 허용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한전을 발전, 송전, 배전과 판매 등 기능별로 분할하고 발전과 판매 부문은 경쟁으로 전환한 뒤 민영화까지 추진하는 구조 개편을 했다. 그러나 이 정책은 발전만을 6개 자회사 간 경쟁으로 전환한 어정쩡한 상태로 2003년에 중단되고 말았다.

경쟁 효율성, 투자 결정 투명성, 신기술 사업화 등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중단된 사유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한전을 분할해 발전과 판매 부문을 민영화하면 공적 독점이 사적 독점으로 전환될 것으로 봤다. 특히, 외환위기를 벗어나면서 공공부문 개혁에 대한 정치적 동력이 약해졌으며, 경쟁의 큰 정당성인 전기요금 인하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탄소중립이 예정대로 추진되면 화석연료 소비가 줄어들지만 전력 수요는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차가 일상화하고, 2050년까지 전력 소비는 현재에 비해 배 이상 늘 것으로 본다. 전력을 비롯한 에너지산업 전반에 새로운 기술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전력 소비의 60%를 차지하는 제조업은 수출을 위해서 최대한 청정에너지를 사용해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이처럼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경제 전반에서 전기화가 1980년대처럼 가속도를 더하면 현 산업구조가 효과적인지 평가해볼 필요가 있다. 당시에는 공기업을 중심으로 국책사업을 전국 단위로 효율성 있게 추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에너지 설비의 수용성이 급속히 악화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중앙집중형 전력공급 구조 구축에만 매달리기보다 전기 소비를 최대한 분산해 전력망 투자를 줄여야 한다. 몇 해 전 대형 송전탑 건설 과정에서 극심한 마찰을 빚은 밀양 사태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제 단순히 전력 설비를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 소비도 함께 효율화하는 수급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엄청난 투자와 신기술의 사업화를 위해 공공부문은 전국 단위의 통합적 전력망과 장기 투자가 필요한 대형 사업에 주력하고, 민간의 역량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수도권에 있는 데이터센터처럼 에너지를 많이 쓰는 시설을 발전소 인근으로 이전하는 것도 수요 분산과 지역 활성화 차원에서 검토해볼 만하다.

독수리가 30년 이상을 살면 무뎌진 부리를 깨뜨리고 발톱도 뽑아내 탈바꿈한 뒤 40년을 더 산다고 한다. 공기업 구조조정이 아니라 탄소중립을 지원하고 미래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우리 에너지산업 지도를 다시 그려서 대응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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