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ESG 스타트업 '키다리 아저씨'로

입력 2022-04-10 17:10   수정 2022-04-11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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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이 직접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펀드를 조성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 8~9개월간 주요 기업이 만든 ESG 펀드의 규모만 2000억원 선에 달한다. 대기업이 ESG 경영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스타트업을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기업 주도 스타트업 펀드 급증
10일 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는 지난달 29일 400억원 규모의 ESG 스타트업 펀드를 조성했다. 특정 산업군 내 대표 기업이 협업한 국내 첫 사례다. 통신 3사가 각각 100억원을 출자했다. 펀드 운영사인 KB인베스트먼트 역시 100억원을 내놨다.

이 펀드는 탄소 저감 등 친환경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 육성에 전액 사용될 예정이다. 각 사가 기존에 운영하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과 스타트업 펀드를 연계해 운영할 계획이다. 투자 여부는 3사 대표가 참여하는 자문위원회가 결정한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의 ESG 혁신 기술을 함께 발굴하기로 뜻을 모았다”며 “통신사의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이 한층 더 체계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펀드를 본격적으로 조성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SK텔레콤과 카카오는 작년 8월 ICT업계 최초로 200억원 규모의 ESG 펀드를 만들었다. 이 펀드는 지난해 12월부터 본격적으로 ESG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를 돕고 교육 격차를 해소하는 데 앞장서는 스타트업이 지원 대상이다. 지난해엔 청각장애인이 운행하는 택시 서비스를 제공하는 ‘코액터스’와 시각장애인용 점자 콘텐츠를 제공하는 ‘센시’, 어린이 대상 메타버스 기반 교육 콘텐츠를 제공하는 ‘마블러스’ 등이 각각 30억원의 자금을 수혈받았다.

제조업체 중에선 LG화학이 스타트업 펀드 조성에 적극적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7월 신한은행과 1000억원 규모의 ‘ESG 동반성장펀드’를 조성해 중소기업의 ESG 경영을 지원하고 있다. 9월엔 롯데케미칼이 500억원 규모의 ESG 전용 펀드를 만들었다. 탄소중립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친환경 전략 핵심 기술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게 목적이다.
VC, 은행과는 투자 목적 달라
지금까지 스타트업 투자를 주도한 곳은 액셀러레이터(AC)와 벤처캐피털(VC) 등이다. 정부의 모태펀드 자금에 자체적으로 모은 자금을 더해 스타트업 지분을 사들였다. 이들은 투자금 회수에 방점을 두고 유망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추가 투자받거나 상장 가능성이 높은 업체에 자금이 몰린 배경이다. 스타트업 투자의 또 다른 축인 시중은행은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펀드를 조성한 대기업은 스스로를 ‘전략적 투자자’(SI)라고 설명한다. 투자한 스타트업과 제휴를 맺고, 이를 통해 자사의 기존 사업과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게 주된 목표다. 통신사 기지국 구축에 필요한 자재를 친환경 소재로 만들 수 있는 스타트업이 있다면 통신 3사 공동펀드가 투자하는 식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ESG 경영을 강화할 수 있는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외부에서 얻기 위해 펀드를 조성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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