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약 하려면 월세 100만원 달라"…임대차법 청구서에 '한숨'

입력 2022-04-13 10:29   수정 2022-04-13 12:15


임차인을 보호하겠다며 도입한 임대차 3법(계약갱신청구권제·전월세상한제·전월세신고제)의 부작용이 임차인에게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다.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을 써버린 임차인들이 본격적으로 새 전셋집 구하기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급등한 전셋값에 더 작은 집으로 옮기거나 월세를 낀 반전세를 알아봐야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른바 '전세대란'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에 거주하는 35세 직장인 이모 씨도 이러한 상황이다. 이씨가 현재 거주하는 전셋집은 2018년 보증금 4억5000만원에 계약했고, 2020년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해 계약을 연장했다. 이 아파트의 전셋값은 작년에 9억원을 넘다가 최근 진정됐다고는 하지만, 7억원 안팎에 형성되어 있다.

이씨는 "현재 전세 계약이 오는 8월 만료되는데, 재계약을 하려면 최근 시세를 맞춰야 한다더라"라며 "신규계약으로 7억3000만원에 맞춰주거나 전세보증금을 기존보다 약간 줄이고 월세를 100만원씩 달라는데 감당하기 어려워 더 작은 집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세살이를 하려면 추가 대출을 알아봐야 하는데, 마땅치 않으면 월세를 살 생각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전세보증금 가운데 2억원을 대출금으로, 매달 45만원 내외의 이자를 부담하고 있다. 대출을 갱신하면 이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전세자금 대출 상단 금리는 5.02%인데, 이를 적용하면 매달 이자가 86만원으로 불어난다. 대출을 상환하고 월세를 내는 편이 은행에 이자를 내는 것보다 저렴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시장에서는 2020년 7월 도입된 임대차 3법의 청구서가 약 2년 만에 임차인에게 도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임대차법이 시행되고 시장에는 '이중가격', '삼중가격'이 형성됐다. 신규 전셋값이 갱신의 두배까지 치솟기도 했다. 최근 전셋값이 진정됐다고는 하지만, 갱신권을 사용한 세입자 입장에서는 시장에 나와있는 가격이 여전히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부동산R114는 문재인 정부 들어 5년간 전국 아파트 전셋값이 40.64% 올랐다고 집계했다. 임대차법 시행 이전 3년 2개월간은 10.45% 오르는 데 그쳤지만, 시행 이후 불과 1년 7개월 만에 27.33% 급등했다는 설명이다.

그나마 안양의 상황은 다른 지역보다 나은 편이다. 지난해 말 안양과 인접 과천에서 총 8400가구에 달하는 입주 물량이 풀리면서 전셋값이 지속 하락했기 때문이다. 한국부동산원 집계에서 안양시 동안구 전셋값은 올해 3.03% 하락했고 4월 첫 주(4월 4일 기준)에는 0.45% 떨어졌다.

한편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임대차 3법에 대해 전·월세 시장의 불안을 초래했다고 보고 축소하거나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2년간 해당 법안이 가동됐던 터라 당장의 폐지보다는 단계적 폐지 내지 보완책 등으로 속도조절의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임대차 3법이 시장에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고, 국회에서 일방적으로 처리되다 보니 문제점이 많이 노출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임대차3법은 일방적으로 약자가 피해를 보는 것에 대한 보호 장치라는 좋은 의도로 마련된 법"이라며 "임차인 보호와 주거 약자의 주거 안정은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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