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호의 국제경제 읽기] 냉혹한 각자도생 시대…유연한 통상전략을

입력 2022-04-13 17:34   수정 2022-04-14 00:23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빚어진 신냉전 양상에서 특이한 점은 자의든 타의든 서방 투자기업들의 대거 러시아 철수다. 2년 전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자 세계 각국은 개인용보호장비(PPE)의 자국 생산 필요성을 외쳤다. 공급망 차질로 해외 운송이 마비되자 해외 투자의 자국 또는 인근국으로의 회귀, 즉 리쇼어링과 니어쇼어링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2018년에는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이 격화하면서 쌍방 간 관세 폭탄을 터뜨리는가 하면 전략물자, 희귀 산업재, 첨단기술의 수출을 제한하는 기술 전쟁이 개시됐다.

이런 일련의 세계 경제 흐름을 돌이켜보면, 결국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는 글로벌시대의 내리막길을 달려왔다는 안타까운 결론에 도달한다. 저비용 고효율을 추종하는 자유무역 및 국가 간 투자 원칙을 포기하고, 첨단기술 부문에서의 극우 신산업 정책이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 재연되면서 자유시장 이념이 훼손돼 왔다. 이 때문에 혹자는 글로벌시대의 종언, 그리고 냉전시대의 귀환을 경고한다.

사실 한국은 냉전 종식 이후 지난 30년간 글로벌 자유무역의 수혜국이었다. 자유무역이 국내 업계 간 이해 조정을 수반하는 일이어서 정치적 어려움도 따랐지만, 글로벌시대는 통상국가인 한국에 그 이전 30년간의 산업화 결실을 거두는 기회의 마당을 제공했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은 우리에게 너무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글로벌 금융위기 후 미국에서 유럽으로, 다시 중국으로 번져간 경기 불황과 보호무역주의의 먹구름은 우리나라 통상 구조의 숨통을 조여 왔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 대비 총 무역 비율은 2011년 110% 수준에서 현재 70% 수준까지 떨어졌고, 무역수지는 2008년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우려하는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위기는 언제나 있어 왔고, 세계 경제 질서도 항상 변화돼 왔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처럼 적자생존의 원리를 기억해 적응력을 보여야 할 때다. 즉 미·중 무역갈등, 코로나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이 가속한 신무역 질서를 냉철히 분석하고 우리의 생존 전략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신질서의 핵심은 첫째, 164개 회원국을 거느린 세계무역기구(WTO)의 분쟁 해결 기능 마비다. 다자간 자유무역을 이념으로 하는 WTO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무역 마찰 해소, 전쟁 방지를 위한 숙원사업으로 1995년 출범했고 2001년 중국, 2012년 러시아 가입으로 정점에 도달했지만, 지금은 분쟁 해결 기능이 마비된 상태다. 둘째, 지난 20여 년간 한국이 총력을 기울여 온 자유무역협정(FTA)이 신냉전 질서하에서 경제 권역의 지역 파편화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는 여전히 남은 시장을 찾는 통상 확대 전략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신냉전이 우리의 다변화된 통상관계에 미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유연한 방어 전술이 절실하다.

더 시급한 것은 지금 파괴되고 있고, 신냉전 질서로 더 파괴될지 모르는 공급망을 지키는 일이다. 지난 역사에서 보호무역주의가 극성을 부린 시기에 자원보유국들은 자국의 거시경제 안정을 위해 자원민족주의를 택하곤 했다. 우리나라는 주요 20개국(G20) 중 글로벌가치사슬(GVC) 참여율이 가장 높아 특히 개발도상국들의 자원 무기화 경쟁이 과열되면 지금보다도 더 큰 희생이 우려된다.

결국 이 시대 우리의 적자생존 전략은 거시경제 안정과 더불어 반도체, 배터리, 원전, 바이오 등 미래 먹거리 산업에 필수적인 원유, 광물, 곡물 등 원재료와 산업재를 집중적으로 보유한 국가들과의 협력에 우선순위를 둔 경제 안보 외교 전략이어야 한다. 특히 이들 자원보유국은 중남미,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등 개도권 지역에 편재해 있어 이들과의 협상에서는 그들의 개발 아젠다에 먼저 주목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혜롭고 다차원적인 협력 모델을 제시하고, 다양한 정책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 정부의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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