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이렇게 빨리 쫓아올 줄은…" 1위 뺏긴 디스플레이 '초비상' [강경주의 IT카페]

입력 2022-04-16 11:00   수정 2022-04-16 18:45


세계 최고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점유율 1위를 지켜오던 한국 디스플레이가 17년 만에 처음 중국에 밀려 2위로 내려앉았다. 한국 경제 기여도와 일자리 창출 능력, 미래 성장성에 비해 디스플레이 산업 자체가 홀대받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새 정부 정책에도 이렇다 할 비전이 안 보인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과거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주도하던 일본이 한국, 중국, 대만에 주도권을 내준 전례가 있는 만큼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정부에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디스플레이 점유율 1위, 17년 만에 중국에 내줘
16일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와 시장조사기업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액 기준 국가별 디스플레이 시장 점유율에서 중국은 41.5%를 차지, 33.2%에 그친 한국을 따돌리고 1위를 꿰찼다. 점유율은 액정표시장치(LCD)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를 모두 포함한 것으로, 한국이 1위를 넘겨준 건 17년 만이다. 직전 해까지만 해도 한국은 중국보다 9.4%포인트 높았다.

중국이 한국을 추월한 건 저가 공세로 LCD 시장을 거머쥐어서다. 국가별 LCD 시장에서 중국은 이미 2018년 한국을 제치고 1위를 기록 중이고 지난해에는 50.9%를 차지해 과반을 넘었다. 가격 경쟁력을 상실한 삼성디스플레이는 아예 LCD 철수를 추진 중이며 LG디스플레이는 LCD 생산을 탄력적으로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그 사이 중국 최대 패널 업체 BOE는 자국 정부의 파격적인 보조금 지원에 힘입어 세계 최대 LCD 제조사가 됐다. BOE는 지난해 LCD 매출 286억달러(한화 약 35조원)로 전체 LCD시장의 26.3%를 차지했다. 특히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TV, 정보기술(IT) 기기 수요가 증가하고 LCD 패널 가격이 오르면서 BOE, CSOT, 티엔마, 비전옥스 등 중국 기업의 매출이 크게 증가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국의 저가 공세에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LCD보다는 고부가 제품인 OLED로 방향을 틀었다. 옴디아에 따르면 한국은 OLED 세계 시장에서 82.3%의 점유율로 독보적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은 16.6%에 불과하다.

하지만 여전히 TV와 노트북 등 대형 디스플레이 시장이 LCD 중심이어서 중국의 전체 디스플레이 점유율 상승세는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국이 OLED를 대량 생산해 패널 단가를 떨어뜨려야 중국이 주도하는 LCD 시장을 대체할 수 있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추세'다. 기업 혼자 고군분투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OLED 역시 중국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싹트고 있다. 현재 한국은 OLED 시장에서 점유율 82.3%로 1위를 고수하고 있지만 2016년 98.1% 이후 꾸준히 감소세다. 중국은 같은 기간 1.1%에서 지난해 16.6%까지 치고 올라오며 OLED 성장 초기의 허들을 넘었다는 평가다.

급기야 중국은 OLED에서도 한국과의 본격 격차 줄이기에 고삐를 죄고 있다. BOE 등이 모바일, 노트북, 태블릿 등 중소형 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OLED를 상용화했다. 중국 스마트폰 내수시장을 중심으로 OLED 점유율을 확대하면서 LCD에 이어 OLED에서도 한국을 위협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한국 경제 기여도 큰데 지원 부족해"
한국 경제에서 디스플레이가 담당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의 지난해 수출액은 214억달러(약 26조4000억원) 수준. 전년(180억달러·약 22조2000억원)보다 약 19% 증가한 수치로 디스플레이는 반도체, 자동차 등과 함께 국내 수출을 지탱하는 핵심 산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지난 3월 정보통신기술(ICT) 수출입 동향 자료에 따르면 반도체가 최고 수출액(132억달러·16조2000억원)을 기록했고 뒤이어 디스플레이가 24억5000달러(약 2조9000억원)로 2위 수출 품목에 이름을 올렸다. 일자리 창출 효과도 만만치 않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에 따르면 디스플레이가 2020년 배출한 산업 기술인력은 5만명으로 2019년 대비 5% 늘었다.

그러나 이 같은 산업 기여도에 비해 정부 지원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반도체·2차전지·바이오에 대한 연구개발(R&D) 지원과 규제 개선 내용이 담긴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이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했지만 디스플레이는 제외됐다. 당초 디스플레이도 포함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법안 논의 과정에서 기획재정부가 세수 감소를 이유로 반대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공식 공약집에서도 뚜렷한 디스플레이 정책은 찾아볼 수 없다. 디스플레이는 인공지능(AI), 반도체와 함께 국가전략산업으로 묶여 대규모 지원과 민간 투자를 유도하겠다는 원론적인 내용 정도로 언급됐다. 차세대 반도체 산업 육성, 기술인력 10만명 양성, 공급망 재편 움직임에 대응해 통상 협력 강화 등 구체적 공약이 담긴 반도체 정책과 대비된다.

정부 R&D 사업이나 인력양성 사업에서 디스플레이 분야가 홀대를 받는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실제로 올해 인력양성 국책과제 신규 사업에 디스플레이쪽은 단 1개의 사업도 선정되지 못했다. 반도체와 배터리에서 각각 2개와 1개씩 신설된 것과는 다르다.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등이 주목받는 것에 비해 디스플레이 홀대론이 나오는 이유다.
"메타버스 시대=디스플레이 시대"
한국이 'OLED 초격차'를 유지하려면 정부 지원 확대를 통한 디스플레이 산업 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다고 업계는 주장한다. 산업을 선도하기 위해 OLED와 퀀텀닷(QD)을 비롯해 접히는 폴더블, 돌돌 말리는 롤러블, 신축성을 가진 스트레처블 디스플레이 등 차세대 제품에 대한 R&D 지원과 원천 기술 확보가 시급하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수율(양품 비율)과 투자 자금 문제로 대형 OLED 공장 신축 계획을 결정하지 못했다. 업계에서는 일단 삼성과 LG가 올해 7조원 이상 규모의 OLED 시설 투자에 나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지금 당장 신·증설 투자를 단행하더라도 양산은 내년 하반기부터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학계에서는 '메타버스 시대=디스플레이 시대'로 인식하고 있다. 자율주행차, 웨어러블 기기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가 필요한 정보기기도 무수히 쏟아진다. 반도체와 배터리처럼 디스플레이도 국가경제의 핵심 안보 산업이 될 게 뻔하다는 말이다. 중국이나 다른 국가에 디스플레이 주권을 내주면 첨단 산업 전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경고성 발언이 연일 나오는 까닭이다. 디스플레이 공급난으로 휴대폰이나 자동차 공장이 멈추는 것 아니냐는 말도 현장에서 심심찮게 들린다.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1위를 두고)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지만 예상보다 빠르다"며 "LCD도 OLED처럼 한국이 글로벌 점유율 80% 이상이었던 적이 있다. 그렇게 먼 얘기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OLED 앞서 있다고 안심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며 "점유율 3위인 대만도 무섭게 따라오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산업 최상단에 반도체가 자리하고 있다면 그 다음은 디스플레이인데 정부가 중요성을 모르는 것 같다"며 "TV, 노트북, 스마트폰은 물론 앞으로 디지털 출입문, 디지털 창문, 디지털 도로, 디지털 자동차 전면 유리, 디지털 엘리베이터, 백화점 쇼핑몰 내부 디스플레이 소재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게 디스플레이도 도배될 텐데 주도권 절대 뺏겨선 안된다. 윤석열 당선인의 관심이 절실한 분야"라고 호소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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