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가격 급등이 국내 건설 현장을 덮치고 있다. 철근 시멘트 등 핵심 자재 가격이 치솟자 납품업체들은 공사 중단까지 거론하며 건설사에 가격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자 건설사는 시행사에 ‘이전 가격으로 공사 못 하겠다’며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는 도미노 인상 요구가 벌어지고 있다. 원자재 가격 급등세가 이어질 경우 국내 주택 건설 현장에 일대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건설사 수익은 보통 공사비의 5~10%(일반관리비 제외) 선이다. 공사비가 10% 오르면 사실상 적자 공사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작년 상반기에 이어 올해 건설 현장에 철근 대란이 되풀이되고 있다. 철스크랩(고철) 가격 급등으로 작년 말 t당 100만원 선이던 철근 기준가격이 이달 중순 104만8000원으로 상승했고, 유통 판매 가격은 t당 112만8000원에 달한다. 지난 2월 평균 공사비 20% 인상을 요구한 철콘 업체들은 공사비 인상이 없을 경우 조만간 골조 공사 현장의 공사 중단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레미콘 업체들도 이달 말까지 가격 인상이 관철되지 않으면 수도권에서 공급을 중단하는 등 하도급 업체의 공사 보이콧이 속출할 전망이다.
메이저 건설사들은 시행사에 늘어난 공사비 분담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 도급은 관공서 표준계약과 달리 물가상승률이나 건설공사비지수 등을 반영하는 내용이 계약서에 담겨 있지 않다. 시행사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건설사가 혼자 감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공공 도급은 물가상승률 3% 초과 시 공사비 상향이 가능해 그나마 나은 편이다. 2019년 12월 첫 삽을 뜬 서울 남대문로 한국은행 통합 별관 공사가 철근 대란으로 차질을 빚자 계룡건설은 조달청에 공사 기간 7개월 연장과 공사비 318억원 증액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사비 파동으로 아파트 현장이 셧다운(공사 중단)될 경우 공사 기간이 늘어나 입주에 차질을 빚는 등 주택시장이 일대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신규 개발이 중단되면 향후 일정 기간 후 입주 물량이 줄어 시장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범정부 차원에서 ‘건설 공사비 정상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원자재 공급과 가격 안정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김승배 한국부동산개발협회장은 “주택 250만 가구 공급 계획보다 현실적으로 더 급한 문제가 바로 건설자재 가격 안정”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자재·장비·하도급·건설사·발주처 등 건설산업 상생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하고 공사비 부담 완화를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진수/심은지/강경민 기자 tru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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