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기아 등 완성차업체와 포스코, LG에너지솔루션 등과 같은 대형 부품 공급사 간에 ‘비용 전가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전기차를 비롯한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철광석, 리튬 등 원재료 가격이 걷잡을 수 없이 오르면서다. 완성차업체는 배터리의 비용 상승분을 대부분 떠안은 반면 최근 이뤄진 자동차 강판 가격 협상에선 선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공급망 불안이 지속될수록 원재료 비용을 전가하려는 양측 간 줄다리기는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2020년 4월 t당 83달러 수준이던 철광석 가격은 지난해 4월 170달러대까지 치솟은 뒤 최근 155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가격이 다소 안정을 찾긴 했지만 누적된 비용 상승 부담이 크다는 게 철강업계의 주장이다. 석탄 가격은 더욱 급등했다. 지난해 4월 t당 112달러에서 최근 404달러로 1년 만에 네 배가량으로 치솟았다. 지난해 상반기 t당 5만원, 하반기 12만원 인상에 큰 이견 없이 합의했던 포스코가 올해는 25만원가량 큰 폭의 인상을 요구했던 이유다.
현대차·기아도 순순히 철강업계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처지다. 두 회사가 포스코와 현대제철로부터 납품받는 철강재는 연 600만t에 이른다. 자동차 한 대당 들어가는 철강재는 1t 정도인데, 단순 계산하면 t당 25만원 인상 시 약 1조5000억원의 원가 부담이 추가로 생기는 셈이다.
t당 15만원 수준의 인상폭을 두고 업계에선 현대차가 이번 협상에서 원료값 상승 부담을 철강업계에 상당 부분 전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선 포스코가 원료값 상승에도 지난해 역대 최대인 9조2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면서 협상력이 약화됐다는 후문이다.
이는 완성차업체들이 가격보다는 일단 배터리 ‘확보’가 우선인 상황에 몰렸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전기차 수요가 급증하면서 ‘생산 대수=판매 대수’인 공급 부족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여기에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 간 전기차 주도권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전기차 시장에선 ‘스케일 업’이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현대차나 기아 입장에서 배터리 가격 상승분을 언제까지 부담할지는 미지수다. 비용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올투자증권에 따르면 니켈값이 t당 8만달러일 경우 현대차와 기아를 합친 배터리용 니켈 재료비는 1조56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테슬라 등 일부 전기차 생산 업체가 리튬 등 원재료 채굴·정제에 뛰어들 가능성을 내비친 이유다.
이 같은 원료값 상승분은 결국 소비자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완성차업계는 차값 인상으로 원료비 상승분을 감당하고 있다. 현대차의 대당 평균판매가격(ASP)은 2020년 4182만원에서 지난해 4758만원(국내 승용모델 기준)으로 1년 만에 13.8% 올랐다. 완성차업체 관계자는 “소비자들도 치솟는 차량 가격을 용인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