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제로 코로나' 中의 자승자박

입력 2022-04-18 17:39   수정 2022-04-19 00:10

“미국이나 유럽 기업인은 이미 자유롭게 왕래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만 발이 묶여 있다. 지금 벌어지는 격차는 한동안 따라잡기 어려울 것 같다.”

며칠 전 중국의 국유 투자은행(IB) 임원 A씨를 만났을 때 들은 얘기다. A씨는 대형 국유기업의 해외 진출 지원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만나는 기업인마다 방역 통제 때문에 공식 목표인 5.5% 경제 성장은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고도 말했다. 사석이라고는 해도 국유기업 임원이 외국인 기자에게 하기엔 수위가 높은 발언이었다. 중국 기업인들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 대한 불만이 가감 없이 전해져 왔다.

중국 당국이 요즘 코로나19와 관련해 내놓는 정책들은 가끔 진의가 무엇인지 의심될 정도로 오락가락하고 있다. 하루는 방역 통제가 민생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겠다고 했다가, 그다음 날은 ‘방역을 느슨하게 할 수 없다’는 식이다.
헷갈리는 방역 메시지
이번 상하이 봉쇄 상황이 대표적이다. 상하이시는 소규모 주거지별로 출입을 통제하는 ‘정밀방역’을 유지하겠다고 하다가 갑자기 ‘단계별 봉쇄’로 전환했다. 이어 1단계인 동부 봉쇄가 끝나기도 전에 시 전역을 봉쇄했다.

이 과정에서 한 방역요원은 주인이 격리된 직후 남겨진 반려견을 때려죽였다. 코로나19 음성 증명이 없다고 응급실에 들어가지 못한 노인이 사망하는 일도 발생했다. 식재료 부족에 민심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물류대란을 비롯한 경제적 피해도 전국으로 확산했다. 다급해진 당국은 일부 지역 봉쇄 해제와 생산설비 재가동 계획을 들고나왔다. 심각한 지역은 감염자가 ‘0’이 될 때까지 봉쇄를 유지해온 기존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 비춰보면 파격적 조치다.

그러나 정책 효과가 나타날지 의문이다. 상하이에서 봉쇄를 유지하는 지역은 여전히 50%를 넘는다. 공장 재가동의 조건인 ‘폐쇄루프’식 가동은 이미 상하이 봉쇄 시작 당시부터 가능했던 방식이다. 내부 민심을 관리하면서 외국인 투자자를 안심시키기 위한 정책이라는 생각도 든다. 외국인은 이미 지난달 중국 채권을 월간 기준 최대, 주식을 역대 세 번째 규모로 팔아치웠다.

지난 11일에는 해외 입국자의 격리기간을 상하이와 광저우 등 주요 도시에서 완화한다는 방침도 나왔다. 그러나 시진핑 국가주석이 이틀 뒤 “방역 작업을 느슨하게 할 수 없다”며 제로 코로나를 다시 강조하자 해당 보도들은 주요 매체에서 사라졌다.
심각한 민심 악화
중국의 언론 통제가 심하다고 해도 대다수 국민은 오미크론 변이 특성과 이에 대응한 주요국의 방역정책 완화를 인식하고 있다. 이제는 코로나19 감염 자체보다 밀접접촉자까지 수백 명이 최소 14일 이상 시설에 격리되는 리스크를 더 두려워하는 분위기다. 감염 사실을 숨기는 사례가 나오면서 한순간에 당국의 통제 범위를 넘어서는 대규모 확산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의료 시스템이 취약해 제로 코로나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관영매체들은 봉쇄 완화 요구를 ‘탕핑(平·드러누움)’이라고 공격한다. 일각에선 올가을 공산당대회에서 시 주석의 3연임이 확정될 때까지 감염자가 폭증하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는 정치적 목적이 크다는 해석도 나온다.

경기 악화는 전염병 확산보다 민심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이미 선전과 상하이 등 대도시에서 항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중국이 시 주석의 최대 업적인 ‘코로나와의 전쟁 승리’에서 언제 벗어날 것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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