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대형 보험사 최고경영자(CEO)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올해 들어 시장금리가 급등하면서 보험사의 건전성 지표로 활용되는 지급여력(RBC) 비율이 크게 떨어져 회사마다 비상이 걸렸다. 보험업계는 이 같은 금리 상승 리스크가 새 회계기준(IFRS17)이 도입되는 내년부터 자연스럽게 해소되는 만큼 연말까지라도 RBC 악화에 따른 적기시정조치를 유예하는 등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일반적으로 금리 상승은 주로 장기 채권에 투자하는 보험사의 수익을 개선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동시에 보유 중인 채권 가치를 떨어뜨려 급격한 금리 상승 시 일시적으로 자산 건전성이 나빠질 수 있다.
문제는 올 들어 시장 금리가 급등세를 타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9일 기준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 3.35%로 작년 말(연 2.25%)보다 1.1%포인트 뛰었다. 보험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0.1%포인트 오르면 RBC 비율은 5%포인트가량 하락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즉 단순 계산으로도 RBC 비율이 작년 말에 비해 50%포인트 정도 하락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당국은 현재 보험사들에 RBC 비율을 150% 이상 유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보험업법에 따라 100% 선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생보사 중에선 DB생명(157.7%) 흥국생명(163.2%) KDB생명(168.9%) 한화생명(184.6%) 등이, 손보사 가운데서는 흥국화재(155.4%) AXA손해보험(169.7%) 한화손해보험(176.9%) KB손해보험(179.4%) 등이 금융감독원 권고치에 근접했다.
이에 따라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금감원 권고치는 물론 법적 기준마저 밑돈 보험사가 여럿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금융당국은 해당 보험사에 경영개선권고 등 적기시정조치를 내릴 수 있다.
내년 보험 부채를 시가로 평가하는 IFRS17이 도입되면 금리 상승 리스크가 크게 해소되는 상황에서 현 RBC 비율에 집착해 보험사별로 막대한 자본 조달 비용을 물리는 게 맞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생명보험협회 관계자는 “내년 도입될 신지급여력제도(K-ICS)를 조기 적용해 RBC 비율이 100% 이하여도 K-ICS 비율이 100% 이상이면 적기시정조치를 유예하는 등 대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에 대해 “보험사들의 우려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며 “업계와 협의해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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