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레나 배어복 독일 외무장관은 20일(현지시간) “우리는 올여름까지 러시아산 원유 수입량을 절반으로 줄이고, 연말에는 완전히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다음 타깃은 러시아산 천연가스”라며 “러시아산 에너지의 완전한 수입 중단만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향해 우리 EU가 공동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EU는 오는 24일 프랑스 대통령선거 결선 이후 본격적으로 러시아산 에너지 금수 조치 마련에 나선다.
배어복 장관의 ‘EU 제재 로드맵 협력’ 발언은 독일 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들 것이란 경고가 잇따른 가운데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독일은 EU 회원국 가운데서도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다. 지난해 기준으로 천연가스 수입량의 55%를 러시아에서 들여왔고, 석유와 석탄 역시 각각 35%, 50% 이상을 러시아산으로 채웠다.
독일의 경제연구소 5곳은 최근 공동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상반기에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중단할 경우 올해 경제성장률은 1.9%에 머물고 내년에는 -2.2%의 역성장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금수 조치의 충격은 앞으로 2년 안에는 회복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강조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독일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7%에서 1.7%로 하향 조정했다.
위기감은 독일 산업계를 중심으로 커지고 있다. 20일 독일 연방통계청은 3월 생산자물가지수(PPI)가 전년 동기에 비해 30.9% 뛰어 역대급 상승폭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각종 운영 비용이 치솟아 독일의 기업환경이 열악해졌다는 의미다.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PPI 폭등을 견인한 것은 러시아 전쟁으로 치솟은 에너지 가격이다. 독일 제조기업이 지불한 에너지 비용은 작년 3월에 비해 84% 급등한 것으로 추산됐다.
러시아산에 편중된 에너지 수입구조로 인해 독일은 이달 초 EU가 러시아산 석탄 수입을 금지하는 조치를 발표할 때도 엇박자 행보를 보였다. EU는 원래 오는 7월부터 러시아산 석탄 수입을 완전히 끊으려 했지만, 독일의 요청에 따라 금수 시기를 한 달 늦췄다.
그러나 러시아의 무차별적인 공격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면서 독일 정치권이 뒤늦게나마 러시아 제재 동참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최근 의회 연설에서 “장기적으로 에너지 자립을 위해 석탄, 원유와 가스에 대한 수입 구조를 재구성할 것”이라고 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