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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는 명목금리와 실질금리로 구분된다. 은행에 3%의 이자를 받기로 하고 1년간 돈을 맡겼다면 연 3%는 명목금리다. 올해 물가상승률이 4%라면 실질금리는 연 -1%가 된다. 통상 시장금리는 물가상승률과 실질성장률의 합으로 계산된다. 만약 올해 인플레이션율이 4%이고 실질성장률이 2.5%라면 연 6.5% 안팎에서 시장금리가 형성돼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이론상이다.
그런데 이처럼 경제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인플레이션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한국 조세당국이다. 물가가 오르건 말건 수십년간 과세표준과 세율이 그대로인 세목이 수두룩하다.
상속세가 대표적이다. 상속세는 과표를 기준으로 30억원까지 10~40%의 세율을 적용하고 30억원을 초과하면 50%를 매긴다. 공제는 일괄공제 5억원과 기초공제 및 그 밖의 인적공제 중 큰 금액을 적용한다. 문제는 이 과표와 세율, 공제가 2000년부터 그대로라는 점이다.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7.3%다. 올해는 4% 안팎 더 오를 전망이다. 인플레이션 여파로 상속재산 금액이 커진 만큼 조세당국은 세금을 더 가져간다. 조세당국이 사실상 인플레이션을 즐기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과거 상속세는 그야말로 부자들만의 세금이었는데 이제 서울에서 웬만한 집 한 채 가진 중산층도 대상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근로소득세도 마찬가지다. 근로소득세의 분기점은 과표 8800만원이다. 8800만원 이하는 6~24% 세율이, 그 이상에선 35~45% 세율이 매겨진다. 8800만원 이하 구간의 세율은 2010년부터 변동이 없다. 2010년 이후 지난해까지 소비자물가가 22.9% 올랐다는 점을 감안하면 과표 구간과 세율을 그대로 둠으로써 조세당국은 중산층과 저소득층에서도 사실상 증세를 이뤄냈다.
증세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예를 들어 살펴보자. 2009년에 과표가 4500만원인 근로자가 있다고 치자. 이 근로자가 받는 연봉이 12년간 소비자물가 상승률만큼 높아졌다고 하면 2021년 과표는 5530만원(만원 아래는 절사)이 된다. 이 근로자의 2009년 근로소득세는 567만원이었는데 2021년엔 805만원으로 치솟는다. 증세 폭은 42%에 이른다. 인플레이션율만큼 임금이 늘어 실질소득이 증가하지 않았는데 정부가 238만원을 사실상 강탈한 것이다. 그 여파로 가처분소득이 줄어든다.
다음달 10일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는 세제에 대해선 명확한 공약을 내세우지 않았다. 하지만 윤 당선인은 작은 정부와 시장 주도 성장을 강조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 세 부담을 낮추는 것이다. 세금을 거둬 정부가 쓰는 것보다, 세금을 덜 낸 가계와 기업이 지출을 늘리는 것이 경제에 더 좋다.
당장 손봐야 하는 세제는 상속세와 증여세다. 중산층에까지 상속세를 물리는 것은 과하다. 세율은 그대로 두되 과표 구간을 상향할 것을 제안한다. 20% 세율 구간을 과표 1억~5억원에서 1억~10억원으로, 30% 세율 구간을 5억~10억원에서 10억~20억원, 40%는 10억~30억원에서 20억~50억원, 최고 세율인 50%는 50억원 이상으로 높이는 게 그간 방치돼 온 상속세를 정상화하는 방법이다. 근로소득세 역시 같은 방법으로 고칠 수 있다. 줄어드는 세금은 소비 확대에 따른 부가가치세 증가로 만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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