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욕장의 이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해수욕장법)에 따른 해수욕장 기본계획에 ‘해수욕장 시설의 감염병 등에 대한 안전·위생·방역 관리에 관한 사항’을 신설한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실제 주인공인 핸드볼 레전드 선수 출신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1일 대표 발의한 해수욕장법 개정안 내용입니다. 해양수산부 장관이 10년 마다 수립하는 해수욕장 기본계획에 감염병과 관련한 대비책을 마련하라는 취지의 법안입니다.
해수욕장 기본계획은 백사장은 물론 탈의·샤워시설, 화장실, 주차장, 관리사무소, 인명구조선 등 해수욕장과 관련한 모든 시설에 대한 사항을 망라합니다. 해수욕장은 다중이 이용하는 시설이라는 점에서 코로나19 등 감염병과 관련된 규정을 마련하라는 법안 취지는 언뜻 충분한 타당성이 있어보이는데요.
뜻밖에도 이 법안은 발의되자 마자 엄청난 반대에 직면했습니다. 국회는 발의된 법안에 대해 2주(14일)간 입법예고 기간을 두고 있습니다. 입법예고 기간 동안 국민 누구나 국회 입법예고 시스템 사이트에 들어가 발의 법안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면 됩니다.
임 의원의 해수욕장법 개정안에는 24일 오전 10시 기준 4147개 의견이 접수됐습니다. 대부분이 “해수욕장에까지 백신패스를 적용할 우려가 있다” 등 반대 의견입니다. 찬성 의견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현재 입법예고가 진행 중인 134개 법안 중 의견 수가 5번째로 많습니다.
다른 법안들 역시 입법예고 의견 수 상위권을 차지했습니다. 의견수 상위 1~10위 중 임 의원 발의 법안만 4개입니다. 교육시설법 개정안(1만283개)의 경우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담은 검찰청법(2만1344개)·형사소송법(1만5956개) 개정안 다음으로 의견 수가 많습니다.
반대여론에 시달린 건 입법예고 사이트 뿐만이 아닙니다. 같은 기간 임오경 의원실에는 하루 최대 수백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임 의원 개인 휴대폰으로도 반대 의견이 담긴 ‘문자폭탄’이 쇄도했습니다.
임 의원 측은 일부 단체가 방역패스와 백신접종을 의무화하려는 것으로 법안 취지를 오해해 집단적 반대 운동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회원 수 4400여명인 네이버카페 ‘코로나 백신 부작용 연구소’가 대표적인 반대 운동단체로 지목됐습니다.
이 카페는 임 의원의 감염병 관련 6개 법안을 ‘염병시리즈’로 규정했습니다. 반대 이유로는 “코로나를 빌미로 전체주의적 가축방역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한다”는 점을 내세웠습니다.
한 회원은 “감염병에 대비한 방역 및 안전대책 자체가 의미 없고 오히려 지난 2년간 부적절하고 괴이한 감염병 관리 때문에 국민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은 상태”라며 “더 이상 감염병 관련된 법안은 필요 없으며 기존의 여러 법안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른 회원은 코로나 백신 부작용을 반대 이유로 제시했습니다. 그는 “모든 신체적 질병에 대해 그 예방과 치료법은 본인이 선택하고 책임질 문제”라며 “정부가 제시한 백신으로 감염병을 전혀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진 뒤에도 이런 위헌적인 법안을 계속 발의하는 것은 혹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고 했습니다.
의원실 관계자는 “2020년말 서울 동부구치소 집단 감염 사태에서 보듯 해수욕장이나 밀폐된 다중이용 시설은 집단 감염 위험이 높은 상황”이라며 “이들 시설에 대한 기본계획을 수립할 때 감염병 관련 방역대책을 포함시키라는 것일 뿐 구체적으로 백신접종이나 방역패스 등을 시행하라는 내용은 전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미 비슷한 취지의 8개 법안이 지난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시행에 들어간 점도 강조했습니다. 임 의원은 작년 2월 문화재와 여가시설, 도서관, 영화관 등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관 다중이용 시설 기본계획 수립에 감염병 대책을 넣도록 하는 법안들을 발의했습니다. 이들 법안의 국회 논의 과정에서 별다른 여야 간 특별한 이견이나 반대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임 의원은 “발의 법안은 꼭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앞으로 이런 감염병이 또 발생할 수 있으니 대비책을 미리 마련하자는 취지”라며 “입법상 분명한 오류가 있다면 바로잡아야겠지만 의도나 절차, 내용적인 측면에서 그런 부분이 전혀 없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임 의원이 발의한 ‘감염병 6법’이 백신접종이나 방역패스 시행을 강제하는 것이 아님은 명백해 보입니다. 일부 단체들의 반대 행동이 지나친 오해에서 비롯됐다는 설명도 수긍이 갑니다.
하지만 방역패스와 백신접종으로 대표되는 정부의 방역정책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해 일각에선 ‘정치방역’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는 점 역시 엄연한 사실입니다. 앞으로 정치권이나 정부에서 관련 입법이나 정책을 마련할 때 이런 불신이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둬야 할 것 같네요.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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