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기 실적이 발표되는 '어닝 시즌'에도 증시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실적 시즌 초반까지만 해도 기업들의 호실적이 증시를 이끌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미국 중앙은행(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 행보 바탕에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의 악영향까지 보태 시장은 약세를 보이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증가한 비용을 다른 경제주체에 전가할 수 있는 기업들에 관심을 가지라는 조언한다.
2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일 네이버(NAVER)는 1500원(0.52%) 내린 28만7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에는 28만5000원까지 빠져 52주 신저가를 이틀 연속으로 다시 썼다. 지난 20일 이후 4거래일 연속 하락하며 10% 가깝게 하락했다.
시장 기대치에 크게 못 미친 1분기 실적을 발표한 영향이다. 네이버는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1조8452억원, 영업이익 3018억원의 실적을 기록했다고 지난 21일 밝혔다. 직전분기 대비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4.3%와 14.1% 줄었다. 특히 영업이익이 에프앤가이드에 집계된 컨센서스(증권사들의 전망치 평균) 3416억원보다 11.65% 적은 ‘어닝 쇼크’였다.
수익성 측면에서 네이버의 발목을 잡은 건 인건비였다. 안재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개발·운영비가 임금 인상 효과와 인력 충원에 따라 전년 동기 대비 19.8% 증가한 4482억원을 기록하며 영업이익률이 16.4%로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게임 기업들도 잇따라 어닝 쇼크를 기록했다. 언택트 트렌드가 확산하는 과정에서 몸값이 크게 뛴 개발자 인건비를 부담했지만, 확률형 아이템 논란과 이에 따른 신작의 흥행 부진 탓이었다.
미국 증시에서도 언택트 수혜주의 몰락이 나타났다.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기업 넷플릭스는 작년 4분기 가입자가 20만명 줄었다는 내용이 포함된 실적을 발표하고 직후인 지난 20일(현지시간) 하루만에 주가가 35% 넘게 폭락했다. 이후로도 넷플릭스 주가는 반등하지 못하고 간밤까지 3거래일 연속 내리막을 탔다.
시장에서는 1분기에 넷플릭스 가입자가 251만명 증가했을 것으로 기대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서의 서비스 중단으로 약 70만명의 가입자가 사라진 걸 감안해도 쇼크다. 특히 구독료 인상으로 인해 북미 지역에서 64만명의 가입자가 감소했다. 유럽, 중동, 라틴아메리카 등에서도 가입자들이 이탈했으며, 아시아 지역에서만 가입자가 109만명 늘었다.
넷플릭스의 가입자 감소 배경은 OTT 시장의 경쟁 심화다. 전통적인 콘텐츠 기업 디즈니와 워너브러더스에 이어 애플까지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국내 시장에서도 웨이브, 티빙, 왓차 등OTT 경쟁서비스들이 즐비한 상황이다.
성장 기대감이 큰 기업의 성장성에 의구심이 생기자 나쁘지 않은 실적도 주가 붕괴를 막지 못했다. 넷플릭스의 작년 4분기 매출은 78억7000만달러로 시장 기대치 79억3000만달러에 소폭 못 미쳤다. 주당순이익(EPS)이 3.53달러로 컨센서스 2.89달러를 웃돌았지만 주가에 긍정적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안소은 KB증권 연구원은 “팬데믹이 마무리되고 인플레이션이 장기화되면서 개인들의 소비지출 행태가 바뀌고 있다”며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실질 소비 여력은 작아지고 필수 소비 비중이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재량 소비 여력은 줄어들게 된다”고 진단했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과 미국 모두 1분기 기업이익 증가율이 빠르게 둔화되는 가운데 언택트 테마에서 컨택트(대면) 테마로 이익 개선의 중심이 전환되고 있다”며 “비용 부담이 높아짐에 따라 가격 부담을 전가할 수 있는 업체들만 건재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업종이 항공과 필수소비재다.
한편 항공기업은 재량 소비의 영역에 속하지만 코로나19 확산 사태로 인해 2년 넘게 억눌린 여행 수요가 폭발하면서 높아진 연료비(유가)와 인건비 부담을 소비자에게 받아낼 수 있을 전망이다.
국내 증시에서는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에서 발발한 전쟁으로 인한 식량난 우려에 음식료 관련 테마주들이 급등락세를 보이는 중이다. 농업 관련 테마, 곡물을 원료로 사용하는 사료 테마, 사료를 가축들에게 먹여야 하는 육류 관련 테마, 육고기의 대안으로 꼽히는 수산물 테마가 돌아가며 들썩이고 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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