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피'에 지쳐 물 건너갔더니 반토막 속출…"A·C 모두 망했다"

입력 2022-04-27 17:36   수정 2022-05-04 15:24


“하락장의 대피처는 미국 빅테크 기업이라는 편견이 깨지고 있다.”

26일(현지시간) 미국 나스닥지수가 3.95% 급락하자 한 국내 펀드매니저는 이렇게 말했다. 1년8개월 만에 가장 큰 낙폭이다. 서학개미들은 지난해 부지런히 미국 시장으로 향했다. 코스피지수가 지난해 1월 고점을 찍은 뒤 장기 박스권에 갇혀 있는 동안 나스닥지수는 11월까지 연일 신고가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미국 빅테크 불패 신화와 메타버스 열풍으로 ‘머니 무브’는 가속화됐다.

올해 들어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서학개미들의 잠 못 이루는 밤이 지속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긴축에 대한 우려에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 봉쇄까지 대내외 악재가 쏟아지면서 뉴욕증시도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어서다. 미국 시장이 지지부진하자 중국 시장으로 눈을 돌렸던 중학개미들도 손실을 보고 있다.
○성장 꺾인 미 성장주 주가 급락
나스닥지수는 지난해 11월 고점 대비 26일 기준 23% 하락했다. 레버리지 상품에 베팅한 서학개미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국내 서학개미들의 순매수 1위 종목은 ‘프로셰어즈 울트라프로 QQQ ETF(TQQQ)’다. 나스닥지수 하루 등락폭의 3배를 추종한다. 이 상품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연초 대비 54% 손실을 봤다. 2위 종목인 ‘디렉시온 데일리 세미콘덕터 3X ETF(SOXL)’는 더 심각하다.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의 하루 변동폭을 3배로 추종하는 이 상품은 연초 대비 67% 하락했다.

일반 주식도 마찬가지다. 넷플릭스가 연초 대비 67% 하락한 데 이어 엔비디아와 테슬라가 각각 36%, 17% 떨어졌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가 16% 하락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미국 테크 기업들의 낙폭은 훨씬 더 크다.

정성한 신한자산운용 알파운용센터장은 “금리 인상기를 맞아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밸류에이션이 높았던 순서대로 꺾이고 있다”며 “투자자들은 미국 빅테크 기업은 오를 것이라는 ‘믿음’으로 버티고 있는 국면”이라고 말했다.

호실적이 주가 상승을 담보하지 않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일 테슬라는 월가 기대치를 훌쩍 뛰어넘는 ‘어닝서프라이즈’를 발표했지만 주가는 하락세를 보이다가 26일 하루에만 12.18% 급락했다. 알파벳은 1분기 매출이 작년 동기 대비 23% 늘었다고 발표했지만 월가의 기대치를 밑돌면서 시간외 거래에서 3.16% 하락했다.
○바닥 깊었던 중국 증시
중학개미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올해 초 나스닥지수가 지속적으로 하락할 때 시장에서는 중국 시장 바닥론이 나왔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끝나면 중국의 방역 정책도 ‘위드 코로나’로 바뀌고, 본격적인 경기부양책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면서다. 낙폭과대주를 담기 위해 중국 펀드로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개인투자자들은 중국 전기차 관련주를 모아놓은 ‘TIGER 차이나전기차 SOLACTIVE ETF’를 연초부터 27일까지 7000억원어치 순매수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제로 코로나’ 방역 정책은 오히려 더 강화됐다. 상하이에 이어 베이징 봉쇄령에 대한 우려로 주가는 급락했다. TIGER 차이나전기차 ETF는 연초 대비 33% 하락했다. 개인 순매수 상위 종목 중 간펑리튬이 연초 대비 이날까지 29%, BYD가 12%, 천사첨단신소재가 37%, 가이가 44% 급락했다. 홍콩에 상장된 알리바바, 지리자동차, 텐센트 등도 각각 29%, 46%, 24% 하락했다.

다만 중국 증시는 바닥을 잡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27일 배터리 등 성장주들이 반등하면서 상하이종합지수는 2.49% 상승했다.

김경환 하나금융투자 신흥국투자전략팀장은 “상하이 봉쇄령 완화 움직임과 공장 가동 및 물류 이동 정상화 기대감이 나오면서 중국 시장이 반등했다”고 말했다.

고재연/서형교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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