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밥과 경영에 대한 이해, 그리고 이것을 거래의 범주로 파고든 공무원들의 기묘한 상상력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공정거래위원회 고발로 검찰이 수사하고 있는 사건 중에 ‘삼성그룹의 웰스토리 부당지원’이라는 것이 있다. 웰스토리는 삼성물산의 100% 자회사로 10만 명이 넘는 삼성 직원에게 매일 식사를 제공해왔다. 고발 요지는 과거 삼성 미래전략실이 삼성전자 등을 동원해 웰스토리에 부당하게 많은 밥값을 지급했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웰스토리가 이렇게 얻은 이익을 모회사인 물산에 배당금으로 제공했고, 이 돈은 다시 물산의 대주주인 이 부회장 일가에 들어갔을 것이라는 단계적 배당론까지 보도자료에 적시했다.
사건의 발단은 2012년 말 삼성전자 젊은 직원들이 식당 운영에 대해 잇따라 불만을 터뜨리면서다. 품질이 엉망이고 맛도 없다는 불평이 사내 인터넷 게시판을 달궜다. 가뜩이나 구글이나 애플로 핵심 인재들이 이탈하던 상황이었다. 당시 삼성 미래전략실장인 최지성은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보고 참모들에게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도록 지시했다. 웰스토리가 즉각 식재료비를 올렸고, 전자를 비롯한 계열사들도 웰스토리에 지급하는 식대를 인상했다. 이런 과정이 모두 기록으로 남아 공정위로 넘어갔다. 공정위는 일련의 과정을 부당지원으로 보고 지난해 6월 최지성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웰스토리가 삼성 4개사로부터 지난 9년간 평균 25%의 높은 영업이익률을 올린 것과 삼성 내부 회의자료들이 첨부됐다.
발표 당시 그는 국정농단 사건으로 서울구치소에 갇혀 있었다. 수감자들 사이에서 ‘멘탈 갑’으로 불릴 정도로 평정심을 유지하던 그는 난데없는 소식에 주저앉았다고 한다. 감옥생활이야 역사적 소용돌이에 휘말린 운명 탓으로 돌릴 수 있지만, 직원을 위한 자신의 판단과 지시가 오너들을 향한 과잉충성으로 둔갑해버린 대목에 이르러선 이루 말할 수 없는 열패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 사건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대목은 공정위가 밥값 인상 혜택이 이재용 일가로 흘러갔다는 프레임을 짰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삼성가 오너들이 직원들 밥값 빼 먹는다’는 것이었다. 판단을 하려면 몇 가지 숫자들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재용 일가가 올해 받은 배당금은 8000억원이 조금 넘는다.
공정위 주장대로 이재용 일가가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이익을 얻었다면 어느 정도였을까. 웰스토리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700억원 안팎의 순이익을 거뒀다. 같은 기간 100% 대주주 삼성물산에 건넨 배당액은 평균 500억여원이었다. 이 돈이 물산에 30%의 지분을 갖고 있는 이재용 일가에 그대로 배당된다면 연간 150억원 정도로 추산할 수 있다. 개인으로도 연간 3000억원 이상의 배당금을 받는 이재용이 직원들과 함께 밥을 먹으면서 식당사업 배당금을 세고 있었을까. 개연성을 판단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영업이익률 25%도 들여다봐야 할 듯하다. 평균이 25%라고 하니 누군가 정교하게 설계한 것처럼 보이지만, 연도별로는 21.4%에서 27.2%에 이른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거래 기업의 수익률을 봐가면서 흥정하는 경우는 없다. 같은 그룹 회사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공정위는 아무리 봐도 25%가 높다고 하지만, 도대체 누가 적정 이익을 판단할 것이냐의 문제가 남는다. 10%면, 15%면 괜찮다고 할 것인가?
근본적으로, 밥 좀 맛있게 해달라고 부탁하면서 밥값까지 깎아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것일까. 웰스토리는 그룹의 최말단 기업이지만 삼성전자 사장들에겐 ‘왕갑’이다. 힘이 세서 그런 게 아니라 배후에 직원들의 원성이 있어서다. 까딱하다간 “직원 식사 하나 못 챙기는 무능한 경영자”라는 소리를 듣는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상상력을 시험한다. 최지성이 밥값 후하게 책정한 것이 직원들을 위한 것이냐, 아니면 조금이라도 오너 배당금 더 챙겨주려고 한 것이냐다. 둘 중에 하나만 진실일 것이다. 공정위 기업집단국의 엘리트 공무원들은 음모론적 시각으로 내달렸다. 이재용과 최지성을 악마화하는 프레임을 채용했다. 이제 검찰의 판단이 남았다. 검사들의 전복적 상상력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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