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130년 역사를 지닌 의류 브랜드 아베크롬비&피치의 흥망성쇠를 그렸다. 아베크롬비&피치는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잘나가는’ 글로벌 브랜드가 됐다. 2013년 국내에도 들어와 큰 인기를 얻었다.
다큐멘터리의 구성은 다른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회사와 패션업계 관계자들의 인터뷰가 이어진다. 다큐멘터리는 브랜드의 성공 전략과 실패 요인만 파고들지 않는다. 브랜드 안에 담긴 미국 젊은이들의 욕망과 편견, 차별의 문화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이를 위해 다양한 기록물과 영상을 동원한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시기별 미국 문화와 분위기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아베크롬비는 섹시 이미지를 강조한 젊은 백인 남성 모델을 앞세워 고객을 끌어모았다. 쇼핑몰이 소비의 중심이던 1990년대~2000년대는 이런 마케팅 기법을 매장에 적용했다. 매장 입구에 화려한 외모의 직원들을 배치하고, 진한 향수로 고객에게 다가갔다.
따지고 보면 이런 마케팅은 “쿨하고 잘생긴 사람에게 마케팅한다”는 마이크 제프리스 당시 최고경영자(CEO)의 전략에 따른 것이었다. 제프리스는 외모와 피부색을 중시하던 당시 미국 문화를 옷을 파는 데 적극 활용했다. 흑인 직원 차별은 물론 외모가 떨어지는 직원을 해고하기도 했다.
작품은 아베크롬비&피치의 성장 배경에 미국의 잘못된 관행과 뒤틀린 욕망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미국 드라마와 영화에 나오는 화려한 옷과 멋진 패션의 이면에 극단적인 배타성이 숨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비정상적인 마케팅은 오래가지 못했다. ‘인종 차별 기업’이란 딱지가 붙자 많은 소비자가 아베크롬비&피치에 손사래를 치기 시작했다. 2014년 CEO가 교체됐고, 전략도 “누구든 쿨한 사람이 될 수 있다”로 수정됐다.
이 다큐멘터리의 최대 강점은 ‘패션 브랜드를 통해 미국 문화를 읽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지루하다. ‘릴레이 인터뷰’는 긴박감을 떨어뜨린다. 각종 기록과 영상을 더 많이 보여줬다면 하품을 덜했을 것 같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