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환익 유니슨 회장(전 한국전력 사장)은 2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인위적인 전기료 인상 억제는 더 이상 안 된다”며 이처럼 말했다. 조 전 사장은 14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을 지낸 정통 관료 출신이다. 이후 한국수출보험공사, KOTRA(무역투자진흥공사) 사장 등 한국 산업계의 주요 요직을 거쳤다. 2012년 12월 한전 사장에 취임해 두 차례 연임하며 5년 가까이 한전을 이끈 에너지 업계의 대표 원로이기도 하다.
조 회장은 한전 적자 심화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전의 적자 구조가 심화되면 발전시설 유지·보수(O&M) 업무에 투자하는 게 힘들어진다”며 “시설 피로도 심해지다 사고가 생기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송배전망에 오류가 생기면 군 방공망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한전 적자구조 심화는 안보 문제여서 재정을 투입해서라도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연료비 연동제를 원칙대로 실행하는 등 전기요금의 ‘원가주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는 최근 전기위원회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에너지 원가를 전기료에 반영하는 등 원가주의 원칙을 따르겠다는 뜻을 밝혔다.
조 회장은 또 “탈원전 폐기는 에너지 정책이 제 자리를 찾는 일”이라며 원전 중심의 에너지 전환 계획 의지를 밝힌 새 정부의 구상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는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라도 무탄소 전원인 원전 비중을 30% 이상 가져가는 게 바람직하다"며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와 원전 계속 운전 공약은 반드시 이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원전과 신재생에너지의 조화를 통한 에너지원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회장은 "원전과 신재생에너지는 반대말이 아니라 한배를 탄 것"이라며 "전원 비중의 35~40%는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맡아줘야 탄소중립을 실천하는 에너지 전환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재생에너지 확대가 불가피한 이유에 대해 "원전의 경우 폐기물과 주민 수용성 문제를 고려할 때 무작정 확대하는 게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원전의 수용성 문제를 재생에너지로 메꾸고,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문제를 원전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과거 한전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원전 수출을 작업을 주도했던 조 회장은 "효율적인 원전 수출을 위해선 기술적 실무는 한수원이 맡고, 총괄협상과 금융 문제 등은 전반적 지휘는 한전이 맡는 원팀 전략을 써야 한다"며 "원전 원천 기술을 갖춘 미국과 협업을 강화하면 원전 수출의 기회가 많이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조 회장은 지난 2월부터 국내 1세대 풍력발전 기업인 유니슨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국내 풍력산업 발전을 위해 마지막 소임을 다하겠다는 게 그의 각오다. 그는 "현재 재생에너지는 태양광 위주인데 풍력에너지와의 조화가 없으면 전력망 안정이 어렵다"며 "재생에너지 내에서도 여름과 낮에 유리한 태양광과 겨울과 밤에 유리한 풍력의 상호보완 구조를 짜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 회장은 "유니슨이 육상 풍력 분야에서 국내 1위를 하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라며 "지멘스·베스타스 등 해외기업에 기술력이 2~3년 뒤처져 있는 해상풍력 분야는 이를 따라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지금"이라고 설명했다. "풍력 주권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가 필요하다"며 "풍력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없다면 지금 구상하고 있는 에너지 전환 구상은 허망한 공식일 뿐"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조 회장은 풍력 분야에서 국내 기업을 키우지 않을 경우 풍력 산업은 해외기업들의 놀이터가 되는 것은 물론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조화로운 에너지 전환을 구상하는 현 정부의 계획이 제대로 실현될 수 없다고 본다. 그는 풍력 산업을 키우기 위한 정부의 역할로 △국내 기업 제품에 대한 신재생에너지 의무공급인증서(REC) 혜택 △연구·개발(R&D) 예산 지원 △인허가 절차 간소화 △주민 수용성 확보 절차 마련 등을 꼽았다. 정부가 구상 중인 대규모 풍력단지 건설을 본격화하기 위해선 4~5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조 회장은 정부가 지금부터라도 과감한 지원을 통해서 기술 격차를 좁히는 등 풍력산업을 측면 지원하면 두산중공업·유니슨 등 국내 기업들이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는 "만약 해상 풍력 분야에서 국내 기업들이 기술격차를 좁히지 못하면 지멘스나 베스타스 등이 사업을 독점하게 되고, 실질적인 풍력에너지 접근성과 주도권을 해외에 빼앗기게 된다"며 "전방 산업효과가 큰 풍력산업을 키우는 정부의 전략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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