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경영학의 창시자이자 역대 미국 대통령의 자문역을 거친 피터 드러커는 대통령이 지켜야 할 여섯 가지 계명을 제시한 적이 있다. 도전적인 정치 경제 역풍 속에 시작하는 윤석열 정부의 국가전략과 국정 운영 가이드로 경제 분야 수칙을 오늘날 한국 상황에 맞춰 재구성해 본다.
첫째, ‘공약의 덫’에 걸리지 말라. 드러커는 대통령이 할 첫 번째 일은 선거공약을 잊는 것이라고 했다. 공약에 담긴 경제철학과 정책 기조는 당연히 유지·발전돼야 하지만 구체적 선거공약 내용과 수치에 너무 얽매이지 말라는 뜻이다. 당면한 거시경제 여건을 반영해 실행 가능성과 완급 조절로 우선순위를 재정립해야 한다. 이를테면 새 정부 공약 중 무주택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규제 완화나 50조원 규모 추가경정예산 추진 등은 부작용을 최소화하도록 신중하고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
둘째, 올바른 정책 기조와 강력한 추진력이 도약의 관건이고 정책 추진력은 국민과 시장의 신뢰로부터 나온다. 신3고(新3高,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비상 상황에서 물가 안정, 잠재성장률 제고, 국가 경쟁력 회복이 새 정부에 주어진 소명이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장기 저성장(secular stagnation)과 산업 대전환이 교차하는 갈림길에 섰다. 맞바람을 잘 이용해야 비행기 이륙이 가능한 것처럼 대내외 겹겹이 쌓인 난제와 역풍을 오히려 새 정부 성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비상(非常)시기가 비상(飛上)할 시기’라는 말을 기억하라.
셋째, 재정건전성은 국가 경제의 최후 보루다. 지난 5년간 급속히 늘어난 국가부채 정상화가 시급하다는 국제신용평가 기관과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 경고를 흘려듣지 말아야 한다. 재정정책 여지가 줄어든 현 상황에서는 ‘돈 풀기보다 돈 안 드는’ 규제·노동 개혁이 먼저다. 한국 국가채무 증가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두 배에 달해 재정 준칙 도입은 필수고 연금개혁은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연금개혁은 “더 내고 덜 받자”는 기존 프레임을 넘어 “더 내고 더(오래) 받자”는 발상의 전환과 정교한 설계로 연금재정 지속성과 노후보장성을 개선해야 한다.
넷째, 단기적 경기 반등보다 장기적 지속 가능 성장이 관건이다.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의 최대 리스크 요인인 3화(化, 고령화·양극화·기후변화)의 구조적 도전 속에 지속 성장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것이 핵심과제다. 저출산·고령화 극복은 물론 저탄소 시대의 국가·기업 경쟁력은 생존의 문제인 만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확산 노력도 배가돼야 한다. 최근 필자와 대담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윤석열 정부는 사회적 불평등이 지속 성장을 저해한다는 글로벌 관점을 공유해야 한다”며 포용적 자본주의를 강조한 바 있다.
다섯째, 금융이 살아야 나라가 살고 세계를 알아야 미래가 보인다. 경제 선순환과 경기 회복의 촉매제는 적극적인 투자라고 보면 금융산업과 자본시장의 활력을 키워야 한다. 나아가 경제의 심장과 혈맥인 금융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가 대한민국 선진화의 필수 요건이다. 아시아의 대표적 금융 허브인 홍콩의 위상 추락에 따른 포스트 홍콩 경쟁에 싱가포르, 대만, 일본까지 다 뛰는데 한국만 안 보인다는 국제 투자금융계의 지적이 적지 않다. 지난 수년간 하락해 온 한국 금융 경쟁력의 반전이 시급하다.
끝으로, 천천히 서두르라(festina lente).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좌우명으로 널리 회자하는 말인데 로마 제국의 기초를 쌓기 위해 결단력과 추진력을 갖되 신중하고 꾸준히 나아가라는 뜻의 경구다. 한자 숙어 호시우행(虎視牛行·호랑이 같은 눈빛으로 소처럼 나아간다)과 비슷하다. 경제 패러다임 대전환 시대를 새롭게 여는 윤석열 정부의 역사적 과업은 진정한 선진 강국 대한민국의 초석을 쌓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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