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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국내 군함 시장이 협소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업체들의 출혈경쟁으로 고사 상태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특히 조선 방산업체들이 번갈아 가며 군함을 수주하는 이른바 ‘교호 수주’가 출혈경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에서 군함을 건조할 수 있는 방산전문업체는 대우조선 현대중공업 HJ중공업 삼강엠앤티 등 여덟 곳이다. 배수량 3000t급 이상 대형선은 대우조선과 현대중공업이 번갈아 가며 수주했다. 중소형 조선사는 경비함 등 중·소형선이 주력이었다.
대표적 사례가 1980년대 초반부터 우리 해군이 운용 중인 주력 함정 울산급 호위함이다. 노후한 배치Ⅰ 함정을 대체하기 위해 2010년대 중반부터 배치Ⅱ·Ⅲ 호위함이 잇달아 건조되고 있다. 배치는 동일 성능으로 건조하는 함정의 묶음으로, 배치Ⅰ에서 Ⅱ, Ⅲ로 갈수록 성능이 개선된다. 같은 배치 함정이라도 배를 건조하는 조선사는 제각각이다.
배치Ⅱ 1·2번함은 대우조선, 3·4번함은 현대중공업, 5·6번함은 대우조선, 7·8번함은 현대중공업이 수주했다. 배치Ⅲ는 기본설계와 1번함(선도함)은 현대중공업이 맡았다. 하지만 올 1월 발주된 2번함은 중견 조선사인 삼강엠앤티가 수주했다. 1월 해군이 발주한 3500t급 최신형 호위함 ‘울산급 BATCH-Ⅲ’ 한 척을 3353억원에 따낸 것이다. 삼강엠앤티의 수주에는 경쟁사 대비 낮은 입찰 가격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저가 응찰은 낙찰 후 협력업체를 쥐어짜 비용을 떠넘기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하지만 방산비리 의혹에 휘말릴 것을 의식한 방위사업청은 정성적 해석이 필요한 기술력보다 가격을 낙찰의 1순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조선업계는 현 인력 구조상 교호 수주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같은 배치라 해도 현 인력 규모로는 1번함부터 8번함까지 모두 건조할 수 없기 때문에 인력 충원이 가능한 범위에서만 수주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후속함은 업체가 사실상 스스로 입찰을 포기하는 ‘나눠먹기식 수주’를 벌이고 있다는 것이 통설이다. 업계 관계자는 “발주처인 방위사업청과 여론을 의식해 직전 함정 대비 가격을 높여 쓰는 건 불가능하다”며 “담합 의혹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직전 함정과 비슷한 가격을 써내는 것이 관행”이라고 전했다.
방위사업청 계약관리본부장을 지낸 송학 한국방위산업학회 부회장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방산 부문을 따로 떼내면 대규모 인력 등 인프라 확보를 통한 규모의 경제 실현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는 “각 조선사의 방산 부문을 분할해 합작법인을 설립하되, 정부가 적정 지분을 확보해 업체 간 ‘균형자’ 역할을 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이달 초 발표할 국정과제에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기 위한 방산 분야 경쟁력 강화 방안을 포함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경민/김익환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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