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00일을 앞두고 국내 기업 58곳의 최고경영자(CEO)와 임원들이 수사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 시행 후에도 사망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수사받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산업 현장 사망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는 취지로 제정된 중대재해법이 예방 효과는커녕 기업과 CEO만 범죄자로 전락시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일 박대수 국민의힘 의원이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중대재해법 시행 후 현재(1월 27일~4월 28일)까지 58건의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하루 걸러 한 건 이상 사고가 난 셈이다. 이 중 사망이 56건(64명 사망), 질병(동일 유해 요인으로 1년 내 3명 이상 발생)은 2건(29명 발병)이었다. 현재까지 CEO 등이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사건은 21건이다. 중대재해법은 오는 6일로 시행 100일째를 맞는다.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이 많아 입건 기업은 급증할 전망이다. 시공능력평가 상위 10개 건설사 중 세 곳도 중대재해로 수사받고 있다. 국내 한 대형 로펌의 산업안전 분야 변호사는 “1~2년 뒤면 국내 주요 기업 CEO 상당수가 법정에 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중대재해 수사 상황도 마찬가지다. 중대재해 사고 58건 중 조사 대상 기업 관계자의 검찰 송치 여부가 결정된 사고는 두성산업의 급성중독 사태(기소의견 송치)와 한국남동발전의 근로자 추락사고(무혐의 종결)뿐이다. 한 사건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다른 사건이 쌓여가는 형국이다.
검찰 기소로 법정에 서게 되면 더욱 오랫동안 중대재해법에 발이 묶이게 된다. 최고경영책임자의 형사처벌 여부가 달린 기업으로선 검찰을 상대로 치열한 법리 다툼을 벌일 가능성이 높아 재판이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향후 상당수의 CEO가 법원에 출근 도장을 찍게 될 것”이라며 “재판 준비로 이전보다 기업 경영에 집중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와 노동계 안팎에선 처벌 중심 중대재해법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상철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기업과 경영진 처벌보다는 사고 예방을 위해 필요한 책임을 노사에 모두 부여하는 게 더 중요하다”며 “근로자들도 안전보건 확보 의무의 주체로 규정해야 사고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진성/최진석/곽용희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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