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고기 금지하면 업자들 다 죽어"…사회적 합의 물 건너갔다

입력 2022-05-06 15:21   수정 2022-05-06 17:37

정부가 개(犬)의 식용을 금지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9월 "개 식용 금지를 신중하게 검토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말한 이후 정부가 사회적 논의기구를 운영해왔지만 육견업계가 강하게 반대의 뜻을 피력한 결과다. 정부는 합의 도출을 위한 논의 기간을 2개월 더 연장하기로 했다.

'개 식용 문제 논의를 위한 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출범 이후 지난달까지 5개월 동안 전체회의와 소위원회를 각각 일곱 차례씩 개최했지만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6일 발표했다. 이에 위원회는 운영 기간을 오는 6월까지 2개월 늘리겠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동물보호단체와 육견업계, 전문가, 정부 인사 등 총 21명으로 구성된 사회적 논의기구로, 출범 당시만 해도 올해 4월까지만 운영할 예정이었다.

위원회는 "출범 초부터 개 식용 문제에 대한 참여자들 사이의 입장 차이가 컸다"고 털어놨다. 동물보호단체들은 돼지나 소와 같은 다른 가축과 달리 개는 공장식 사육에 적합하지 않은 특성을 갖고 있어 개의 식용을 허용하면 동물학대 소지가 크고, 사육 환경에 위생적으로도 문제가 많다며 개 식용을 반대하고 있다. 반면 육견업계는 개고기를 먹는 식습관이 이미 정착된 문화인 데다 개 사육업자와 판매업자의 생존권이 달려있다는 이유로 개의 식용을 법으로 금지하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일반 국민의 의견 역시 어느 한쪽으로 모아지지 않은 상황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해 11월 전국 18세 이상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개 식용 금지를 법으로 규정하는 것에 대한 찬반 여부를 조사한 결과 '반대한다'는 응답이 48.9%였고, '찬성한다'고 답한 비율은 38.6%였다. '잘 모르겠다'고 답한 인원은 12.6%를 차지했다.

위원회는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개 식용 종식이 시대적 흐름이라는 인식에 공감대를 이루었다"고 밝혔다. 또 식용 목적의 개와 관련된 통계 자료가 그동안 전무한 상황에서 식용 목적 개 사육 현황을 정부가 처음으로 조사했고, 대국민 설문조사도 실시했다고 위원회는 강조했다.

하지만 위원회는 개 사육 현황 및 설문조사 결과는 이날 공개하지 않았다. 위원회 관계자는 "아직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조사 결과를 공표하면 조사 결과를 근거로 여러 혼란이 빚어질 수 있는 점을 고려했다"며 "다음달 합의가 이뤄지면 조사 결과를 공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보다 앞서 개의 식용을 금지한 대표적인 국가로는 대만이 꼽힌다. 대만은 한국과 같이 개고기를 먹는 문화가 널리 퍼져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유기견 문제의 사회적 이슈화, 서구 문화 유입,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의 증가 등으로 개의 식용에 반대하는 인식이 확산됐다.

이에 대만은 단계적인 입법을 통해 개의 식용을 금지했다. 대만이 처음부터 개의 식용을 전면 금지한 것은 아니었다. 대만은 1998년 동물보호법을 제정해 공공장소에서 개의 '도살'을 금지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2001년엔 경제적 목적의 반려동물 도살행위를 금지하면서 위반시 벌금형에 처하도록 했다. 2007년엔 개와 고양이를 도살하지 못하도록 법에 명시하는 동시에 동물의 사체를 판매하는 행위도 금지하기 시작했다.

대만은 2015년 식용 목적의 개·고양이 도살 행위에 대해 1년 이하의 징역 혹은 10만~100만 타이완 달러의 벌금을 물도록 형사처벌 수준을 강화했다. 이후 2017년 4월엔 도살이 아닌 식용 행위 자체를 금지하는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한국도 동물복지에 대한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진 점과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을 고려할 때 대만과 같은 적극적인 입법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0년 7월 보고서를 통해 "개 식용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어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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