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국판 넷플릭스'라는 환상

입력 2022-05-06 17:36   수정 2022-05-0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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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7일 윤석열 정부 인수위 과학기술교육분과 박성중 간사는 브리핑을 통해 방송규제 혁신, 글로벌 미디어 강국 실현과 한국판 넷플릭스 육성이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늦은 감에도 불구하고, 현재 방송시장의 핵심적인 키워드에 대한 정책 방향성을 설정했다는 데 안도감을 갖게 된다. 제시한 정책들이 아직 구체성을 갖추고 있지 않아 평가 대상일 수는 없으나, 향후 5년이 방송산업의 생존 여부를 판가름하는 마지막 시간이 될 것이라는 긴박감으로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우선 규제 혁신이라는 환상. 제시된 정책이 혁파 대상으로 삼을 규제의 상당수는 이미 제로섬 경쟁 상황에 처한 내수시장 사업자들 간의 이해충돌을 제한하는 목적의 것들이다. 이는 계획하고 있는 규제 혁신이 필연적으로 또 다른 이해충돌과 갈등을 초래할 것임을 의미한다. 규제 혁신은 글로벌 미디어 강국 실현의 필요조건일 뿐이다. 따라서 그것이 방송산업의 위기 요인을 근본적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할 수 있다. 오히려 설정된 정책 방향에 더 이상의 구체성을 추가하기에 앞서 우리는 어떤 사업자를 육성할 것인가 하는 전략적 선택을 위한 정책적 논의와 합의를 첫걸음으로 삼기를 권한다.

글로벌 시장 경쟁에 대한 오해. 이미 우리 방송시장은 글로벌 시장에 편입됐다. 매체 환경 변화 탓이고, 넷플릭스라는 용어가 그 증거다. 현재 시장은 방송사업자,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글로벌 OTT 간 치열한 전쟁터다. 따라서 글로벌 OTT를 육성해야 한다는 정책 설정은 정부의 필연적 사명이지만, 그 방법론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글로벌 시장 경쟁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글로벌 시장은 디즈니, 아마존, HBO 등의 콘텐츠 강자가 시장을 쟁탈하는 제로섬 경쟁 상황에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장 개척자(first mover)인 넷플릭스의 시장 점유율이 위축되고 있다. 제로섬 시장에 후발주자로 진입하는 것은 엄청난 위험 감수를 요구한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게임을 시작하면서 달걀을 많이 준비하는 것은 현명한 전략일까. 하지만 현재 방송시장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에는 우회로가 없다. 최선의 목표를 설정해야만 차선의 성과라도 얻을 수 있는 상황이다.

플랫폼 경쟁이 만드는 환상. 현재 방송산업의 위기는 콘텐츠 품질 하락 때문이 아니라 플랫폼 경쟁력 부재에서 비롯한 것이다. 글로벌 시장에 편입된 상황에서 방송 플랫폼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콘텐츠 주권을 상실한 문화 후진국이 된다. 이런 정책 목표의 달성은 기존 방송산업의 인식체계에서가 아니라 위대한 돌파(breakthrough)를 가능하게 하는 단절적 사고를 필요로 한다. 제작비 세액공제, K-OTT 펀드, 자율등급제 등은 시가총액 400조원이 넘는 글로벌 OTT 플랫폼과 경쟁할 수 있는 K-OTT 플랫폼 육성 전략일 수 없다. 국내 방송사업자의 대형화, 국내 OTT 플랫폼의 선진화를 가능하게 하는 획기적 정책이 논의돼야 한다.

다리 놓기, 속도와 방향의 문제. 내수시장 규제 혁신으로 글로벌 미디어 강국을 실현하겠다는 생각, 그리고 제작산업을 지원해 글로벌 K플랫폼을 육성한다는 정책 목표는 인과관계를 무시한 논리적 오류다. 인수위가 제시한 글로벌 미디어 강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여러 개의 다리를 놓아야 한다. 국내 시장 위축이라는 무너진 다리를 다시 세워야 하고, 한국판 넷플릭스라는 새로운 다리를 건설해야 한다. 위기 요인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부합하는 적확한 방향을 제시해야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 지금부터 5년은 시행착오가 용납되지 않는 절박한 시점이다. 그만큼 속도도 중요하다. 예전 정책을 털고 닦아서는 글로벌 미디어 강국이라는 환상 같은 목표의 실현은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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