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가계 다섯 가구 중 한 가구는 소득보다 필수 지출과 빚 상환에 쓰는 돈이 더 많은 '적자 가구'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적자가구는 연소득의 평균 98%를 원리금 상환에 쓰고 있었다.
8일 노형식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이 펴낸 '가계 재무 상태가 적자인 가구의 특징과 개선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전체 2052만 가구의 17.2%에 해당하는 354만 가구가 적자 상태인 것으로 조사됐다. 여기서 적자 가구란 처분가능소득을 식료품·주거·교육·의료 등 필수 소비지출과 금융부채에 대한 원금상환에 쓰고 나면 남는 것이 없는 가구를 뜻한다. 이는 노 연구위원이 2021년 가계금융복지조사 자료를 토대로 계산한 결과다.
적자 가구의 연평균 경상소득은 4600만원, 원리금상환액은 4500만원에 달했다. 벌어들인 돈을 고스란히 빚 갚는 데 쓰고 있는 셈이다. 이외 필수 소비지출은 2400만원, 이자 외 비소비지출은 900만원이었다.
노 연구위원은 "원리금상환 부담이 적자의 가장 큰 요인"이라며 "금융부채 규모가 소득에 비해 너무 큰 것이 적자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소득이나 부채의 절대적인 규모가 문제가 아니라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빚을 진 것이 적자로 이어졌다는 뜻이다.
실제 소득 대비 금융부채의 비율(LTI)이 5배를 넘는 가구를 보면 61.5%가 적자 상태였다. 이런 적자 가구는 평균 금융부채가 3억7000만원으로 흑자 가구(4억6000만원)보다 절대적인 부채 규모가 작은데도 적자를 면치 못했다.
이런 적자 가구는 할부로 결제하는 잔액 비중도 흑자 가구보다 높았다. 일시불보다 할부를 선택하고 카드대금도 최소금액만 결제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노 연구위원은 "가계적자는 생애주기상 최적화를 위해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수 있지만, 소득이 지출에 미치지 못해 빚으로 적자를 메우고 있다믄 상황이 다르다"며 "적자 누적으로 인한 부채 누증이 적자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노 연구위원은 "전셋값이 하락하는 경우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는 것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며 "취약가구의 임대보증금이 경제충격 파급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적자 가구의 원인인 높은 LTI 문제를 해소하고 가계부채를 통제하려면 LTI에 상한을 두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영국의 경우 LTI가 4.5배를 넘는 주택담보대출은 신규 취급 건수의 15%를 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노 연구위원은 "담보인정비율(LTV)이 낮게 유지되더라도 소득 대비 집값이 급등하면 결과적으로 LTI가 높아질 수 있다"며 "LTV 규제를 보완하기 위해 LTI 상한을 보조지표로 활용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이어 "물가 상승과 금리 상승으로 흑자 가구의 가계 재무상태도 취약해질 수 있어 자구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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